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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소설가, 번역가, 재즈바 운영, 마라토너...
그의 전문분야를 나열하려면 끝이 없을 듯하다. 하려고 마음먹은 분야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성에 차는 사람인가보다.
어릴때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으니 왠만한 상식선의 시험은 공부하지 않아도 대충 치를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음악이 너무 좋아 가사를 익히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고, 오랜 외국생활이 가능하게 되고, 외국어 서적 전문 번역가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책만 골라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 작가의 책 전작을 번역할 정도의 어려운 작업도 해내는 사람이다.
체력단련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역시 전문가 수준이라고 할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기록만도 2007년기준 25회라고 하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의 기억속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잘 나갔던 라이브 재즈바 운영까지 정말 무라카미가 못하는 일은 뭔가 싶다.
책을 읽다가 생각을 하고 여러 생각중 한꼭지를 잡아 서평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그런데 이 책은 읽다가 한꼭지를 잡는 것을 놓쳐버렸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책을 읽는 도중 메모를 하면 좋을테지만, 주로 책을 보는 공간이 지하철이다보니 메모를 하려면 챙겨야하는 도구가 너무 많아져 메모 자체가 좀 힘든 상황이기도 하고, 메모를 하다보면 읽는 흐름을 놓치기때문에 일부러 메모하기 위해 읽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1.
요즈음 책을 읽다보면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제일 중요한 무엇을 써야할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거다. 대체 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통 모르겠다.
아마, 전형적인 조직형 인간 -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모범생 - 이라 조직내에서는 대충 쓰임새가 있는데, 조직밖으로 나오면, 즉 조직이 준 명함을 버리고 나면 남는 이름이 없을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대충 시키면 거의 다 해내긴 하지만 정말 잘하는 것은 없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 말이다.
생각2.
사람이 올바로 성장하려면 책을 읽은 것, 사람을 만나는 것등을 통해 얻은 지식을 체화(體化)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회가 정해놓은, 그러나 정작 사회에 나오면 전혀 필요치 않은 교과서 지식을 머릿속에 꾸겨넣느라 지치는 청소년기를 거칠 것이 아니라 책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공부는 좀 순위에서 밀리더라도 책을 정말 좋아하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는 것을 내가 마음 여유롭게 바라봐줄 수 있을지 많이, 아주 많이 걱정된다.
생각3.
아주 오래전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솔직히 그냥 그랬다. 그래서 그의 소설도 읽기를 미뤄두었다가 1Q84를 시작으로 읽어보고 있는데, 그때의 에세이에 비해 이번 잡문집은 확실히 좋았다.
책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늘어서 일 수도 있다... 또는 나이를 먹어 생각의 폭(?)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의 에세이「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책의 출판년도를 보니 1996년. 아. 정말 오래 전이구나. 오래 전에도 나는 책을 좋아는 했었구나. 아주 책을 안읽는 사람은 아니었어... ㅎㅎㅎ
책에서...
p34
그렇지만 최근에 내가 한정되지 않은 행복을 맛본 게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한정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p45
웃어넘기는 것. 웃어선 안 되는 일이라도(아니, 웃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심코 웃어버리는 것.
p102
젊을 때는 음악도 그리고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조건이 조금 나쁘더라도 저절로 마음속 깊이 파고들게 마련이잖아요. 얼마든지 마음속에 음악을 쌓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저축은 나이를 먹은 후에 큰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p104
간절히 듣고 싶은 마음에 고생해서 레코드를 사거나 혹은 콘서트에 가죠. 그러면 사람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음악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감동은 특별합니다.
p190-191
우리가 그 음악의 훌륭함에 우리 자신의 마음이나 육체의 소중한 일부를 위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p294
따라서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이 악곡집이 본질적으로 피아노 기교를 습득하는 예술적인 고급 매뉴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인간의 신체 그리고 그 신체와 연결된 정신의 불균형을 피유하기 위해 바프라는 희유의 천재가 만들어낸 장절한 소우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407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으 ㄴ없다. 지극히 예싸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p420-421
가능한 한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국가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이중성은 많은 작가들이 지금까지 절감해온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상주의는 압도적인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맙니다. 그래도 그러한 강렬한 이상주의와 가혹한 좌절을 헤치고 나옴으로써 우리 세대는 다른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인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p424
나는 명백한 결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