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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 한겨레신문사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들의 안위를 위하여 무고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세기의 사기극 모음집.
무죄에 대한 해학적 표현이 담긴 제목이 재미있는 책.
<저자 소개>
박원순.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1990년대 초반 영국 런던대학교 정경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이수, 미국 하버드 법대 객원연구원.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조제도개혁위원,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등 다수의 인권 관련 단체에서 활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역임, 2006년 희망제작소 설립.
현재 제35대 서울특별시 시장 재직 중.
<책 소개>
만약 이들이 법정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낮추어 불의와 허위, 권력과 타협하여
목숨을 구걸하였다면 그 대가로 목숨은 구했을지 몰라도 우리가 오늘날까지 기억하는
그 명예와 이름은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킴으로써 죽음을 자초한 이들이 법정에 남긴 발자취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오늘 우리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수난을 추억하는 것은 바로 그 불굴의 용기 때문이다. --------- 서문 6p
악은 죽음보다 발걸음이 빠르다 - 소크라테스의 재판
소크라테스의 부당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을 미혹시켜 타락시킨다는 황당한 죄목으로, 국가가 인정한 신을 거부하고
새로운 신을 소개한 죄로 그를 감금하고 결국은 독배를 먹게한다.
그들의 치졸함에 비해 노구의 소크라테스는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인지.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는 그의 의연함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스스로를 변호할만 하건만 오히려 더 강하고 자극적인 발언으로
저들을 궁지로 모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철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복수(?)에 찬 말이 인상적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죽어서 하늘에서 판가름 받자는 말.
인간의 잣대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죽어 신 앞에 나아가 당당하게 심판받자는 그의 의연함.
그는 당시에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일 수 있으나
오히려 그러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위대함이 더욱 빛나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그를 심판한 자들은
그릇된 자로 분류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28p
"악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은 죽음에 붙잡히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악은 죽음보다 발걸음이 빠르기 때문"이다. ------------------36p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예수의 재판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의 죽음은 종교적 승화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시골 작은 마을 목수의 아들로 평범하기 그지 없는 젊은이.
자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며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벗이 되어 주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망령된 발언과 생각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선동하여 자기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의심에서 시발된 조바심이다. 그를 벌한 로마의 지도자들 그리고 그를 처형하라고 선동, 동조했던 유대인들은
예수의 저주(?)대로 오랜 세월 세계를 방랑하고 아랍 민족에 둘러 싸여 백척간두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비극은 보통 영웅의 수난과 죽음을 그린다. 거기에는 장렬하고 위엄있는 죽음이 있다.
그러나 성서의 이 부분은 가장 치욕적이고 고통스런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침을 뱉고, 모독하고, 조롱하고, 뺨을 치고, 저주하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홀로 죽어가게 한 예수의 처형과정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56p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스스로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61p
무덤도, 초상화도 없는 프랑스의 성녀 - 잔 다르크의 재판
프랑스 작은 마을의 18세 소녀를 영웅으로 만들다.
전쟁에서 연패의 두려움에 떤 영국은 프랑스의 소녀 잔 다르크를 죽임으로써 승기를 잡고
패배로 허탈해 있는 영국민들의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평범한 소녀로는 화형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었던
영국 정부는 마녀라는 죄목을 씌워 화형을 집행하게 된다.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 토머스 모어 재판
세속적인 권력과 부와 안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토머스 모어,
총명함과 지혜를 천하가 칭송하던 토머스 모어.
그가 단지 왕의 이혼과 결혼 문제 때문에
그 '모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눈앞에 두었다면 누가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 113p
"반역은 말이나 행동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침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러분의 법이든 세상 어느 법이든간에 나의 침묵을 처벌할 수 없다." --------------- 126p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중략)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까. ------------------------------------ 133p
그는 좋은 관복 안에 늘 거친 모직셔츠와 말총으로 만든 속옷을 입어 피를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로써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고, 세속의 단맛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했던 것이다. --- 136p
'왕은 만인 위에 있다. 그러나 하느님과 법 아래 있다. --------------------------- 140p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다.
수소폭탄도 유도미사일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롭고 독립적이고자 하는 욕망이다." - 미국 케네디 대통령 연설에서 ----- 141p
마녀의 엉덩이에는 점이 있다 - 마녀 재판 : 화형당한 100만 중세 여성의 운명
사회 혼란의 책임 그리고 평소 원한이 있었던 이웃에 대한 무작위 고발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평소 관계 소원했던 이웃 또는 원한 관계가 있던 이웃을 마녀로 고발하여 그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순순한 자백이 아닌 가혹하고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문을 통해 그녀들의 입에서
스스로 마녀라는 자백뿐만 아니라 그들이 준비해 놓은 다른 여인들을 동조한 여인으로 말할 것을 강요하여
한 도시를 마녀의 소굴로 만들기도 했다. 마녀는 이웃간의 알력으로 탄생한 새로운 풍조였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의 삼청 교육대로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 갔던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한 개인의 기준에 의해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고 끌어 가고 부부 싸움으로 큰소리가 담 넘어 이웃으로 흘러가도
끌려 가고 무차별적으로 끌려 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불구자가 되었던가
중세 유럽에 마녀 사냥이 있었다면 1980년대 우리 나라에서는 삼청 교육대 사건이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교회의 부패로 기존의 교리와
교회의 지도력을 벗어나려는 무리가 수없이 생겨났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관용정책을 강경책으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이단을 탄압할 방법을 찾았는데 그 중 마녀재판이 가장 유효적절했던 것이다. ------------ 151p
이미 마녀로 소추받은 자가 심문과정에서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사람도 마녀로 체포되었다.
마녀의 지식은 대체로 마녀로 간주되었다. ------------------------------------- 155p
성 어우구스티누스 '고문에 의해 죄인으로부터 참된 자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 159p
마녀재판이 지닌 실제적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교회로부터 인간의 행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들에게 전가시켰다는 데에 있다.
고통당하고 소외되고 헐벗은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나 탐욕스러운 귀족을 저주하는 대신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 165p
마녀소동은 '빈자와 무산자들의 가동능력을 박탈하고, 서로간의 사회적 거리감을 조장시키고, 서로 의심하게 하고,
이웃끼리 싸우고, 모든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중략)
즉 마녀재판은 메시아적 사회운동의 기세를 꺽고 카톨릭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일반 민중 속에 뿌리박힌 마녀사냥과 마녀재판은 기본적으로 지배자들의 교묘한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었다. ---- 166p
마녀사냥이 보여준 광기는 바로 이 땅에서도 지난 분단 반세기를 통해 그대로 연출되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절대적 신앙화와 그 법적 장치로써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남용은 이 땅을 빨갱이사냥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공정한 재판 절차는 실종되었으며, 고문에 의한 사건은 조작되었고, 자백을 중시하는 재판이 난무하였다.
불고지죄라는 갈고리로 동료와 친지를 쓸어 모아 대형사건을 만들었으며 기술자로서의 고문수사관이 여전히 존재하였다. -- 173p
그래도 지구는 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카톨릭 교황과 그의 추종 세력, 과학적 지식을 기초하지 않은 천동설을 하느님의 진리로 고집하며 천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지동설을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지식인들을 탄압하였다.
과연 무엇이 진리라는 말인가? 잘 못 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들. 그 시도로 인하여 고통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구차한 삶을 위해 자기 신념을 버리고 적당히 타협했어야 했다.
갈릴레오 역시 죽음보다는 삶을 선택해야 했기에 재판정에서 자기 생각이 틀리다고 자기 부정을 해야 했다..
자기를 부정하고 진리에 반하는 사실을 진리라고 타협해야 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 재판
마크 트웨인은 <뉴욕헤럴드>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졸라를 향한 깊은 존경과 가없은 찬사에 사무쳐 있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100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 -------------------- 215p
'가장 강력한 제왕에 반항하며 그에게 경배할 것을 거부할 만큼 강한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다수에 저항하고 오도된 대중에 홀로 맞선 사람은 매우 드물다. - 졸라를 기리는 <클레망소> ---- 240p
나는 프랑스를 믿는다 - 비사정권의 수반, 필리페 페탱의 재판
프랑스가 부역자 처리 문제에서 보여주었던 단호함은 우리의 귀감이 될 만하다.
프랑스는 자신의 어두운 역사와 부끄러운 과거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민족적 정통성을 곧추세웠다. ---------------------------- 268p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재판 -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
외설인가 명작인가 - D.H 로렌스와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재판
하나 하나 끄집어 내어 상세하게 설명하는 게 나을 지 아니면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엮어
이야기하는 게 나을 지 고민 중이다.
전체를 하나로 얘기하려고 하니 내용이 단촐할 것 같고 하나씩 빼 내어 쓰자니 장황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몇 가지 대표적인 것들만 간략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저기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의 재판이라는 것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훗날 재판의 당위성에 대해서 당시의 증거 자료를 기초로 배심원들의 판결을 의뢰했더니 무죄 방면이 되었다고 한다.
여러 번을 반복하여 살 수 있다면 억울한 판결에 보상 받고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 삶을 연결할 수 있겠지만
한 번 뿐인 삶. 생존하는 동안 신원이 되었어도 죽어서 신원이 되었어도 이 얼마나 억울한 것인가?
어떻게 돌이킬 것이고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소외당하는 억울한 마음. 그 누구에게 그 마음 토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까?
당시 그들에게 잘 못이 없다는 사실에 동조하는 것이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
대중의 힘을 빌어 사악함을 꾀하는 세력들. 그네들이 희생시켰던 그들이 죽음 후에 사실이 밝혀져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았으면 후손으로서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천수를 누리며
호의호식하였다면 이 얼마나 원통한 것인가?
<총평>
세계 역사에서 반복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재판 결과이다.
무고한 사람을 몇 몇의 이해 관계속에서 죄인으로 몰아 여론 재판의 피의자로 만들었다.
때로는 잘 못 된 사실 관계로, 때로는 기득권 세력에게 대항하는 자들을
제대로 된 물증도 없이, 심증과 꾸며진 증거로 일방적인 여론 몰이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몇몇 찌라씨 언론과 짝짓기가 되어 그들의 사생활까지 모두 파헤쳐 단순 범죄자가 아니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 재생불가로 만들어 놓는다.
이것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대 세력을 척결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잘 못이 없다고 신원할지라도 이미 그들의 삶은 갈기갈기 찢어져 거덜나 있거나
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다. 과연 그들의 억울함을 어떻게 보상해 준단 말인가?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독자의 행복감 또는 분노 게이지가 오르 내리게 된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분노 게이지를 높이게 만든다.
그러나 감추어져 있던 것을 찾아 알게 되었다는 앎의 행복감과 세상을 똑바로 봐야겠다는 결심을
주는 좋은 책이다.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잘 못이 없다고 밝혀졌지만 그 과정속에서 나도 그들을 비난하는
대중의 한 사람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으면 우리 역시 언젠가는 저들이 쳐 놓은 올가미에 걸려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불평 불만을 쏟아 내라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피해자가 없게 저들의 잣대가 일관성있고 철저하게 적용되도록 견제하는 하기 위함이다.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싸워야 하는 것은 내가 피해자가 될 때 저들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서로 품앗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저들의 억울함에 내 안위를 위해 외면한다면 저들 역시 내가 궁지에 몰릴 때 철저하게 외면하게 될 것이며
기득권 세력의 부당한 폭력에 우리가 저항하고 응징할 수 있는 것은 조직된 힘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역사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 깨어남에 일조할 수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진일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소망이에게도 읽어 보라고 추천한 책으로 특히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으로 읽을 많은 책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 책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 책을 읽을 때 연결하여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른들은 당연히 읽어 보아야 할 책으로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좀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예를 언급하지 않은 것.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진보, 수구로 양분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색이 강한 저자가 수구 특히 박정희, 전두환, mb 시절의 잘 못된 재판을 언급하는 것이
지나치게 편가르기로 비춰질 것을 경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오히려 언급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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