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사실 명제에서 윤리 명제로넘어가선 안 된다. 침대에서 나가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수익 창출에도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혈액 순환이 좋아지거나 수익 창출 가능성이커지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이대로 이불 속에 있는 게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내 생각엔 바로 이 성가신 ‘마땅히‘
가 우리가 겪는 고충의 원인이다. 
- P27

삶은 좋은 것이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침대 안과 달리 저 밖은 춥다. 밖에서는 나쁜 일들이벌어진다. 전쟁, 역병, 이지리스닝 음악.
- P27

마르쿠스는 철학자이자 왕인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세계에서가장 힘 있는 사람이 철학을 공부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마르쿠스는 황제로서 자기 마음대로 뭔가를 하거나 하지 않올 수 있었다. 왜 바쁜 일정 속에서 굳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읽고삶의 난제를 고민했을까?
- P29

나처럼 마르쿠스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열망했다. 하지만 진짜 아침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 사이에는크나큰 차이가 있다. 여기 이렇게 누워 기차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따뜻한 암트랙의 담요를 덮고 있자니, 그 격차는절대 넘어설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 P31

마르쿠스에게는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 P36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열차.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던지는 진부한 말이지만 사실 좋은 표현이다. 우리의 생각은 화물열차의 화물칸처럼 하나하나 앞뒤로 연결되어 있다. 생각은 서로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 P41

나는 궁금하다. 짧은 두 마디 말이지만 그 안에 모든 철학의 씨앗이, 그 이상이 담겨 있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돌파구는 이 두 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궁금하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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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우주는 불안할 정도로 큰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이 사실을 무시하고싶어 한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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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고, 지식은 뒤죽박죽 섞인 사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혜는 뒤얽힌 사실들을 풀어내어 이해하고, 결정적으로 그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 P7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한 현대 철학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 P7

철학과 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수 있다. 
- P9

하지만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되었다. 오늘날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은 기차 타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뭘 모르던 시절에나 하던 것이다.
- P10

하지만 철학은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주고, 바로 거기에 큰 가치가 있다.
- P11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에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법을 가르치지않는다. 철학은 다른 과목과는 다르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 P12

요약하면 내 선택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사상가들이 지혜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전염성이 있는가?
- P14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프랑스 사상가모리스 리즐링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보고 생각한다. "왜 기다려야하지?" 왜 삶이 골칫거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오늘, 바로 지금, 아직 시간이 있을때 인생이 이끄는 대로 나도 철학자가 되면 안 되나?
- P15

태양이 훈련 교관 같은 다정함으로 내게 침대에서 나오라고 지시한다. 악마는 밤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침에 공격한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취약하다. 바로 그때가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 있는지에 대한 기억이 돌아오는 때이기 때문이다.
- P22

나는 내 책상의 대략 절반 정도를 지배하며,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조차도 힘에 부친다. 나는 평생 명함, 잡지 구독알림, 고양이털, 3일 된 참치 샌드위치, 고양이, 자질구레한 불교장신구, 커피 머그잔, <필로소피 나우> 과월호, 개, 세금 보고 서류, 다시 고양이, 그리고 내가 가장 가까운 바다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내 책상 위에 있는지 알수 없는 모래의 반란을 물리치는 중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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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가 무엇을 위해 있고, 또 왜 이곳에 있는지를 누군가가 정확하게 알아낸다면,
그 순간 이 우주는 당장 사라져버리고 그 대신 더욱 기괴하고 더욱 설명 불가능한 우주로 대체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다.
- P235

가령, 초지성적이며 범차원적인 어떤 종족은 한때 ‘깊은 생각‘이라는이름의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만들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궁극적인 해답은 무엇인지 계산하는 작업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그 후로 칠백오십만 년 동안 깊은 생각은 계산과 추정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그 해답이 ‘42‘ 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질문 자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큰 컴퓨터를 새로 하나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컴퓨터는 지구라고 이름 지어졌는데, 이것은 덩치가 너무 커서 종종진짜 행성으로 오인되었다. 특히 그 표면을 어슬렁대는 이상한 원숭이같은 존재들은 자신들이 초대형 컴퓨터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 오해를 전적으로 믿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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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윤재의 절친한 동무이자 동지였다. 죽은 친구의 아내와 결혼해 살았던 아버지의 심리를, 죽은 친구와늘 비교당하면서도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아버지의 심리를, 나는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 P168

어머니의 옛 시동생 가족들이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절을 올리는 모습을 나는 어쩐지 처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저들에게 내 아버지는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형수를 빼앗아간 사람만은 아닐 터였다. 형의 친구이고 동지였으며, 운명이 조금만 달랐다면 형과 친구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
- P169

"아니요. 그것은 신념이 아니요. 사람의 도리제 그짝은순겡을 그만둔 것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소. 글먼 된 것이오. 긍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고 자개 앞가림이나 합시로잘사씨요."
- P180

 나도 아버지를 보았다. 고등학생 때따라가지 못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쉰 가까운 지금도 나는 따라갈 수 없었다.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 P181

우익 세상에서 공화당 삼선 의원을 지낸 제자는 은사의 당부를 잊지 않고 여러차례 아버지의 편의를 봐주었다. 교도소장의 방에서 특별면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이의 도움 덕이었다. 워낙 혹독한 전쟁을 경험한 그 시절에는 이런 인간미가 흔했던 것인지, 아니면 소선생이 워낙 좋은 선생이라 좋은 제자를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다.
- P186

그러나 묻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내 빚이 될까봐. 아버지는 누군가의목숨을 살리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덕으로 살기도 했다.
- P187

 아직 사회주의를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도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 P195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P198

역시 세상은 모르는 일투성이다. 제대로 살아본 적도없는 작은아버지가 죽을 준비를 저렇게 야무지게 하고 있는지 몰랐다.
- P215

아버지는 누가 등쳐먹는 호구가 아니라 자원한 호구였다. 학수 또한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기탱천한 연기를 서슴지 않은학수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지만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 P222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 P249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 P252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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