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울어야 마지막에 다다를 수 있는지 생각하다 결국은 그만둔다. 이 길을 걷는 동안 거창한 사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걸을 뿐이다. 그것이 마침내 그곳에 닿는, 신께서 내게 허락하신 유일한 방법임을 이제는 안다.
- P162

그리고 다른 순례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 마침내 오직,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시간으로 들어선다
이 길을 끝까지 걸어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다른 누구도 아니기 때문에
- P164

그리고 마침내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고백을 건네는 내 마음의 반영, Reflection이 비춰진 우리들의 소행성이 이룬 작은 우주에서 우리만의 까미노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P183

그때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40일을 걸었던 이 길을 하루만에 8시간 만에 ‘역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선사했다.
- P191

길 위에서 겪어낸 경험의 총체가 마련해 준 이 역행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순행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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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전의 무용한 멈춤에서 유용한 시작을 발견했다. 모든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듯 이 잠깐의 멈춤은 일상에서 누군가를 미워했던 지난 나의 끝이기도 여행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지금 나의 시작이기도 했다. 
- P14

나는 여행자가 되었고 마침내 순례자가 되었다. 마지막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를 완전히 놓아주는 것이다.
걸어가는 느리지만 분명한 이 길 위에 그의 도태와 낙오 그리고 절망을 바랐던 나의 마음 또한 놓아두고 간다.
- P28

그는 아파레시다와 대화할 때 갑자기 큰 소리를 내거나 말을 무척이나 빨리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는데 ‘신께서 그에게 감격스러운 다정함을 준 대신 안타깝게도 무엇 하나를 가져가셨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럴 수도 있지.
- P43

내 사진이그들에게 가 닿아 그때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었노라고길에서 한국 청년 ‘Bang‘이 보니또한, 예쁜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나는 내가 찍은 이 사진을 혼자 보던 방에서 나와 언젠가 마주할 한없이 슬퍼할 어떤 순간에 혼자가 아닐 것이다.
- P46

몸을 감싸던 바람막이를 벗어 가방에 넣고 신발 끈을 고쳐 맸다. 길은 이곳에 있다. 그 누구도 혐오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이 길 위에서 다시 걸어간다. 나는 존재하는 단단한 길. 그것으로 되었다.
- P61

무례한 순례자들, 그들은 이 길 위에서 순례자다. 그러나 이길을 떠나는 순간 순례자가 아니다. 이 길 위에서 걸으면서 생각하면서 그들의 무례함을 버리면서 나아가면서 웃기도 하고울기도 하길 바란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 길 위를떠날 때 무례한 순례자에서 무례한 자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 P73

 아니면 무엇을 알려주지 않아도, 어떤 의미가 되지 않아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건지 생각하면서 매일 길 위에 선다.
느슨한 동행인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함께 걷는다. 따로또 같이.
- P84

지친 마음과 몸으로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생각하는 밤을 보낸지 며칠이 지났다. 답은 쉽사리 내게 와 닿지 않았고 때문에 걷는 시간이 고통스러워 길의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바보가 아니라고 나는 뚜렷한 목적을가지고 이 길 위에 섰다는 오만한 생각 속에서 발버둥치고있었다.
- P106

길 위에서의 그냥 나를 내버려 두고 길 위에서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것뿐이면 충분한데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있지도 않은 것을 찾기 위해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그렇게 그뿐인 것을 받아들이고 나 또한 바보가 된다.
- P112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내가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과 타인이 작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다르고 그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었지만 나보다 더 써내는 사람, 배 선생님은 작가보다 더 작가 같았다.
- P120

오늘 떠나신 배 선생님 부부도 오늘 찾아온 써니도 내일 헤어질 지훈이도 우리가 이길 위에서 만나 보낸 시간이 ‘End‘
가 아닌 ‘And‘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속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P123

누군가를 먼저 보내주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임을 깨닫는다. 이 길 위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지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는 철저히 패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 P126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껍데기와 자물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또 다른 순례자인 마리온 할머니의 보내주는 마음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난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가리비 껍데기를 고쳐 달아 더 이상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 P129

상처는 나 스스로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기꺼이 보내주지 못했던 내 마음이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제야 돌아본다.
- P130

길 위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을거듭하다 보면 걷기만 해도 부족한 체력이 금방 소진되기 마련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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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늘날 이런 신념에 어느 정도 동조한다. 우리 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P61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 P62

토마시는 그의 친구 Z에 대해 테레자가 한 말을 떠올리고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Es muss sein!‘ 이라기보다는
"Es könnte auch anders sein.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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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것이 무엇일까?
- P9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P9

역사 속에 단 한번 등장하는 로베스피에르와,
영원히 등장을 반복하여 프랑스 사람의 머리를 자를 로베스피에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아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 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두자. 다시 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 P10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 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 P11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 P12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 P17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 P17

전날까지만 해도 프라하의 아파트로 그녀를 초대하면그녀가 인생 전체를 자기에게 헌납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그였다. 지금 트렁크가 수화물 보관소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이 트렁크에 넣어 역에 잠깐 맡겨 두었다가 자기한테 주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 P20

 이번에도 여전히 테레자가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있다니! 파라오의 딸이 어린 모세가 담긴 바구니를 강물에서 건져 내지 않았다면 구약성서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우리 문명은 어찌 되었을까! 
- P21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 P22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와 공감한다는 뜻이다. 거의 같은 뜻을 지닌 연민(pitié)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pity, 이탈리아어로 pietà 등)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관용을 암시한다.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그녀보다 넉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몸을 낮춰 그녀의높이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 P37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soucit, wspolczucie, Mitgefühl,
medkansla의 의미로는)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
- P38

애인들의 눈에 그는 테레자에 대한 사랑의 도장이 찍힌 사람으로 보였고,
반면 테레자의 눈에는 여러 애인들과 나눈 사랑 편력의 도장이 찍힌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 P43

호텔을 나와 취리히의 집(테이블, 의자,소파, 양탄자를 들여놓은 것도 오래전 일이다.)으로 돌아가면서 토마시는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메고 다니듯 자기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휴대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을 느꼈다.
테레자와 사비나는 그의 삶에 있어서 두 극점, 서로 멀리 떨어져 화해가 불가능하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운 극점을 표상했다.
- P52

그와 테레자의 사랑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피곤하기도 했다. 항상 뭔가 숨기고, 감추고, 위장하고, 보완하고,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하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질투심과 고통과 꿈에서 비롯된비난을 감수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이제 피곤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았다.
- P55

"Muss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토마시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네, 그래야만 합니다!
Ja, es muss sein!"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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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들의 흰 드레스처럼 아무런 욕망도없고, 감정도 없는 시선처럼 냉랭한 것이었다. 그저 자리를 지키며 예의를 차리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면 식사와 모임이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서부에서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조급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지나칠 정도로 소중히 여긴다.
- P24

그러나 도시의 하늘을 장식하는노란 창문들은, 밤거리에서 우연히 고개를 들어 아파트 꼭대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비밀을 속삭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 역시 올려다보고 그 비밀을 궁금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도 존재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인간사에 매력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면서 말이다.
- P55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 마세요. 친구."
개츠비는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친근한 말투로 나를 안심시켰다.
- P80

대도시의 현란한 어둠 속에서 나는 외로움을 느꼈고 사람들도 쓸쓸해 보였다.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낭비하고 있는 젊은이들,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며 레스토랑 쇼윈도 앞을 서성이는 직장인들, 그들에게서 나는 떨쳐 버리기 힘든 인생의 고독을 느꼈다.
- P8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기본 덕목 중에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게 바로 정직함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로 정직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 P89

‘그 문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이 문제에 대해 귀찮음과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베이커를 만나는 건 개츠비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개츠비의부탁이라는 게, 황당한 제안일 것이 뻔했다. 애초에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그의 저택에 발을 들여놓은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 P100

개츠비는 특유의 미소를 지었고, 이번에는 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모호한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솔직히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아요? 그걸 왜 베이커가 대신해야 하는 건가요?"
- P105

"그는 알고 싶어 해요."
베이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낮에 데이지를 초대하면, 자기도 불러 줄 수 있는지말이에요."
개츠비의 소박한 부탁에 나는 감동했다. 저렇게 큰 저택을 사고는 오 년이나 기다리면서 그저 날아드는 하루살이들에게 별빛을 베풀고 있던 셈이었다. 정작 자신은 남의 집에 초대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 P116

소파의 양 끝에 앉아 마주 보고 있었다. 어떤 질문 하나가 던져졌거나, 대답 없는 질문이 허공에 떠 있는 분위기였다. 처음의 당황했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P132

 그 창조적인 열정은 데이지의 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초월했다. 개츠비는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하루하루 독창적인 열정을 확대시키고 끊임없이 부풀렸다. 그리고 자기 앞에 떠도는 찬란한 깃털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무리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애정이라도 한 남자의 가슴에 쌓아 둔 영적인 환상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 P143

 롱아일랜드 웨스트에그의 제이 개츠비는 상상이 빚어낸 자신의 이상향이었다. 그는 신의 아들이었다. 만약 이 말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거대하면서도 통속적인 아름다움을 섬기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열일곱의 소년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제이 개츠비라는 인물을 설정해 놓고, 스스로 그 이름의 명예에 마지막까지 충실했던것이다.
- P146

"과거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돌아갈 수 없다고요? 아니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어요."
개츠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 P165

"모든 걸 예전으로 돌려놓을 겁니다."
그는 스스로 다짐하고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과거에 대해 털어놓았다. 데이지를 사랑한 자신의 신념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은 혼란과 무질서에 빠졌다. 그러나 만약 출발점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서서히 되짚어 볼 수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 P166

"단둘이 있었더라도 톰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데이지가 애처롭게 털어놓았다.
"그건 진실이 아니니까요."
- P203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생일이네."
나는 이제 서른이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십 년이 펼쳐진다는 게 불안하고 두려웠다.
- P208

인간의 공감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언쟁이 도시의 불빛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 P208

그렇지만 지금 내 곁에는 베이커가 있었다. 데이지와는 달리 아주 지혜로운 여자, 잃어버린 꿈을 질질 끌고 다닐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다.
- P209

우리는 서늘한 저녁노을을 뚫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P209

"글쎄, 내가 핸들을 꺾으려는 순간・・・・・・."
개츠비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진실을 직감했다.
"데이지가 운전하고 있었군요?"
"그렇소."
- P221

개츠비는 거짓된 가면으로 데이지를 차지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경멸할 수도 있었다. 그가 있지도 않은 돈을 미끼로 흥정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은연중에 데이지가 그렇게 믿도록 유도했다. 자신도 그녀와 같은 상류층 출신이고, 그녀의 장래를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것처럼 믿음과 안정감을 심어 준 것이다. 사실 개츠비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 P228

개츠비는 부유함 속에서 젊음과 돈이 유지된다는 것, 데이지의 화려한 옷가지, 은빛으로 빛나는 신선한 생동감이 가난한 이들의 처절한 삶과는 무관하게 평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 P229

철로가 곡선을 그리며 꺾이자 서서히 태양도 멀어지고 있었다. 햇볕은 점점 낮게 기울고, 한때 데이지가 숨을 쉬던 사라져가는 도시 위에 축복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개츠비는 한 줌의공기라도 움켜쥐려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눈물에 흐려진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그곳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34

나는 악수를 하고는 집을 떠났다. 울타리에 이르기 직전, 나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돌아섰다.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속물이에요."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
"당신이 그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렇게 외친 것을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은 개츠비를 향한 유일한 칭찬이었다.
- P236

어쩌면 개츠비도 전화가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전화가 오든 말든 이미 상관할 바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만일 이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는 분명히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잃었다고, 이룰 수 없는 단 하나의 꿈에 너무 오랫동안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그는 장미꽃이 얼마나 흉측한 것인지, 또 갓 돋아난 풀밭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깨달았을 때, 나뭇잎사이로 보이는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몸서리를 쳤을 게 분명하다. 형체는 있으나 실재하지 않는 허상의 세계, 그곳에는 가엾은 영혼들이 공기처럼 꿈을 호흡하며 제멋대로 떠돌고, 잿빛 그림자의 환영은 어른거리는 나무들 사이로 소리 없이 그에게 다가왔다.
- P247

우리는 개츠비의 시체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원사가 수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에서 조지 윌슨의 시체를 발견했고,
학살극은 그렇게 끝이 났다.
- P248

어떤 인간이라도 누구나 마지막 순간에는 인간적인 관심을 받을 만한 권리가 있기 마련인데, 불행하게도 개츠비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 P251

그 중서부의 일부인 나는, 지금도 겨울이 오면 조금 엄숙한 기분이 든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우리 가문의 이름이 마을 주소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우쭐함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사람이었고, 아마도 우리는 동부에서는 결코 잘 살지 못했을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 P269

개츠비는 해가 갈수록 멀어지는 그 초록 불빛의 황홀한 미래를 믿었다. 그때의 초록색 불빛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가될 것은 없었다. 내일이 되면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그럴수록 두 팔은 더 멀리 뻗어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화창한 날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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