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이어 나에게 엄습해온 것은 더욱 뜻밖의 것으로, 마치 강한 파도가 가슴을 치는 듯한, 여름 한낮에 한 바가지 냉수를 뒤집어쓴 것 같은 후련함, 후련하다 못해 일말의 자유까지 느끼게 해주는 통쾌함이었다.
- P112

치밀한 성격의 그는 예상치 못했던 사소한 일로 평정이 무너져버리곤 했다. 그 무섭도록 철저한 성격의 내면에 어떤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그랬을까. 
- P127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갗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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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한 재료가 100개라면 100번의 가능성을 지었다가 부순다. 생략할 용기와 본질을 알아차리는 눈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경험치와 노력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커진다. 나는 이 사실에 커다란 위안을 느낀다.
에디토리얼 씽킹에 왕도가 없다는 사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려 애쓰고 실패와 좌절의 데이터를 통해 배우는 길 말고 별다른 요령이 없다는 사실이 좋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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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핥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 P43

세상은 차츰 어두워질 것 같지만, 그렇게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 해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는 깜짝 놀랄 만큼 환해진다. 마치 꿈속같이, 그 순간만큼 세상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 P49

아이가 눈을 꿈벅꿈벅하는 동안 엄마는 아이의 가슴에 서늘한 금이 그어지도록, 그래서 그만 눈물이 날 만큼 매몰차게 아이의 어깨를 떠밀고는 돌아앉아버렸다.
- P83

다음날 아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떠난 게 아니라 곧 돌아올 것이라고도 희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 P91

어린애처럼 들먹이는 아빠의 어깨를 올려다보면서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 찢어지는 것 같던 마음이었을까하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괴로와서 엄마는 이 마음을 버렸을까, 그래서 우리 둘을 떠나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 P98

해질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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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서 피를 갈고 싶어, 라고 아내는 말했었다. 줄곧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사직서를 마침내 직속 상사에게 올렸다던 날 저녁이었다. 
- P18

"얘기를 좀 해봐. 의사가 뭐래?"
"괜찮대."
숨을 몰아쉬듯이 그녀는 말했다. 무섭도록 차분한 말씨였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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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같은 소재도 어디에 주목하는지, 다시 말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창작은 자신이 발견한 의미를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 안으로 던져넣는 행위다. 
- P152

해석 가능성이 수천수만 가지일지언정 ‘나는 이렇게 바라보겠다‘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에디터적 사고력은 정보를 해석하는 자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위치와 관점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 P153

어떤 대상에 대해 해석, 견해, 입장을 표명하려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야 한다. 대상과 자신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세부 사항에 주목하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밝힐 수밖에 없다.
숨어서는 할 수 없는 일. 동시에 수용자에게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짚어준다. 
- P154

독창적인 관점을 갖고 싶다면 이런 프레임을 의심하고 바꿔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령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연시하는 전제를 찾은 뒤에 "정말 그럴까?"라고 덧붙이면서 가급적 많은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 P159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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