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이 그랬다. 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야지 했으나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5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나는 방금 전의 설문조사에서 그녀가 10점을 따냈다는 걸 알았다.
31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아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크리스타는 나를 본 것이 아니었다. 내 문제를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었다.
  52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엄마가 다가가서 크리스타를 안았다. 크리스타는 코를 찡긋하며 기뻐했다. 아버지도 환하게 웃었다. 
나만 고아였다
59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여기저기 책들만 쌓여 있었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었다.
63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사회면의 신문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16세 소녀가 부모와 친구를 살해했으나 살해 이유를 한사코 밝히지 않고 있다.〉 
84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16세 소녀가 절친한 친구를 살해한 뒤, 그 사체를 요리해서 먹여 부모를 독살했다.〉
85p
-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

지금의 나만 예외였다. 크리스타가 어느 날 내게 드러내 보여준 비밀은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권리였다. 앙테크리스타의 얼굴 말이다. 그것은 나를 대수롭잖게 여기기에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랑 둘만 있을 때 그녀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다. 
87p

그녀의 영혼 속에는 크리스타에서 앙테크리스타로 바뀌게 해주는 스위치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스위치에는 중간 위치가 없었다. 온(on) 상태의 그녀와 오프(off)상태의 그녀 사이에 공통분모는 있는지 궁금했다.
89p

아르셰는, 다리가 미치는 거리를 보폭이라 하듯, 화살이 미치는 사정거리를 말한다. 이 말만큼 나를 꿈꾸게 하는 말도 없다. 이 말에는 끊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진 활과 화살, 그리고 무엇보다, 시위가 당겨지는 숭고한 순간, 쏘아진 화살이 솟구쳐 날아가는 순간, 무한을 향한 지향, 그리고 활의 욕망이 제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의연한 실패,
한참 날다 멈춰버리는 활기찬 추진력 등이 내포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르셰는 멋진 비약이요,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를 내포하고 있으며, 한순간에 불타버리는 순수한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93p

나는 크리스테(christée)‘ 라는 말을 지어냈다. 크리스타의 사정권, 크리스테는 크리스타의 독이 미치는 반경을 의미했다. 크리스테는 몇 아르셰만큼이나 방대했다.
크리스테보다 훨씬 넓은 개념도 있다. 앙테크리스테다.
그것은 내가 일주일에 닷새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저주스런 반경, 지수함수의 원주다.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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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여름 내내 내가 찾고 다녔던 건 운동화가 아니라 지난 꿈의 잔해들일지도 모르지만요."
 서교수가 말했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와 공유한 지난 꿈의 잔해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
75p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충분하지않은가. 내게도 엄마와 공유한 꿈이 있다면, 그래서 그 꿈의 잔해들이 바다를 떠돌고 있다면, 나 역시 전 세계의 모든 해변을 기꺼이 순례할 텐데.
76p

제1부 카밀라- 평화와 비슷한 말, 그러니까 고통의 말

바다의 파랑처럼 압도적인 책냄새에 푹 잠긴 채, 서가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94p

제1부 카밀라-바다의 파랑 속에 잠긴 도서실

너는 이제 더이상 유이치가 사랑하던 그 여자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121p

그 답을 알아내려면 더 많은 인생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면 그때 검은 바다를 건너간 일이 네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122p

그래서 만약 네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그럴 때마다 너는 그렇지 않다고, 너는 스스로 충만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어.
128p

마음속으로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일 따위는 추모비 앞에 선 정치가들에게나 어울리지, 이별을 당한 남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네.
128p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중단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읽히기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이 프로젝트야말로 바로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엄마를, 그녀의 고통을, 절망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한번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다음 행선지는 한국의 진남입니다.
130p

제 2부 지은 - 검은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은

날카로운 깨달음이 여기 폐와 위장 사이에 꾹 박혀 늑골을 쑤셔대는 것 같습니다.
134p

제2부 지은 -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 혹은 줄여서 ‘우리사이‘

지훈의 거침없는 말들이 너는 마음에 든다. 암시나 비유의 그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백일하에 또렷하게 드러나는 언어다.
147p

제5부 지은 - 짧게 네 번, 길게 세번, 짧고 길고 길고 짧게, 짧게 한 번

잘된 일이야.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 별별 소문이 다 돌지. 다 미친 것 같아.
168p

제2부 지은 - 지나간 시절에, 황금의 시절에

한 소녀가 고독 속에서 죽어갔다. 그건 누구도 소녀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며, 이 우주에 최소한 한 명은 너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74p

모든 것은 두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177p

제2부 지은 - 태풍이 불어오기 전날의 검모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1p

제2부 지은- 그대가 들려주는 말들은 내 귀로도 들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며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못했을 테니까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요."
241p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244p

제3부 우리 -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결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 나 마찬가지다.
251p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오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진 고통과 슬픔의 기억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빛바렘과 손때와 상처와 잘못 그은 선 같은 것만 보여줄 뿐인 물건들.
253p

제3부 우리 - 저기, 또 저기, 섬광처럼 어떤 얼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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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는 바로 문장으로 옮길 스있는 생각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혹은 막연한 공포 같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첫음에는 공책의 여백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오로지 막막할 뿐이라면 그 막막함에 대해 쓰라고 유이치는 말했다.
50p

그러니까 진남에서는 뭘 먹을 때는 충분히 식혀야만 합니다. 겉보기에는 괜찮을 것 같아도 그대로 삼켰다가 크게 혼나는 수가 있어요.
54p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러그 물고기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다음에는 그 풍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탓에, 어느 순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게 명백해져서.
64p

제1부 카밀라 - 파란 달이 뜨는 바다 아래 오로라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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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길로 자동차는 지나가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동백나무는 어김없이 빨간 꽃을 피우네." 아직도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유이치를 깨워 그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물론 늘 좋은 게 좋은 유이치는 당연하다고 말하겠지만.
49p

제1부 카밀라 - 파란 달이 뜨늗 바다 아래 오로라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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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알폰소 링기스, 『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김창규 옮김, 오늘의책, 2014, 10~14쪽.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133-148p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노바디의 여행 151-185p

삶이 끝없는 이주일 때, 여행은 사치였다.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중에서

여행으로 돌아가다 187-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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