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마음에 누군가 내 삶의 안내 표지판을 제시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인생이 재미없지 않을까. 길을 알려줄 인생의 안내 표지판은 내가 그려나가면 된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만의 속도와 스타일로 말이다.
- P20

이제 그 파란 하늘과 구름 사이에서도, 따뜻한 볕을 마주할 내일을 기다린다. 내가 있는 곳, 너희들이 있는 곳, 모두가 있는 이 세상에, 상냥한 온도를 가진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며.
- P30

행복해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소원이 있다면 시간을 멈춰 달라고 빌고 싶었다.
왜 그동안 엄마의 "시장 가자", "놀러 가자", "산책 가자"라는 말을 무시해 왔는지, 빠르게 흘러간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 P39

다 왔을까 싶어 도착한 곳이, ‘아뿔싸 막다른골목이다.‘ 지각이다. 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길이 없음을 두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하는지 9살 인생에 제대로 배웠다.
- P53

퇴사에 수많은 이유가 붙겠지만 팀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길이, 팀장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걷는 길이 힘들었다. 그런데 퇴사하고 내려오니 한없이 가벼웠다. 산에 정상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이제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고 있다. 
- P59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갔을 때 대문 앞에서 "엄마! 엄마!" 소리쳐 불렀다. 엄마의 대답이 들리지 않으면 빈집인 것이다. 엄마가 없으면 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열린 대문이어도 선뜻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툇마루의 시커먼 그늘아래에는 무서운 괴물이 나를 기다렸다가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잡아먹을 것 같았다. 화장실 문은 내게 덜컹덜컹 큰소리를 쳤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가 올 때까지 눈물을 참으면서 기다렸다. - P71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편의점의 밝은 조명은 항상 나에게 안전을 보증해 주듯 날 불렀다. 막상 걷다 보면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언젠가 닿을 그 불빛을 보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그곳에는 항상 나와 비슷한 외로운 나방들이 있었다. 배가 굶주린 건지 사람에 굶주린 건지 모를 나방들과 같이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돌다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나왔다. 
- P86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나의 소중한 모습들.
그동안의 시간들이 스며든 공간들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과 장소에는 나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 P150

‘내가 쓰는 말,
내가 쓰는 글이 곧 나이듯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공감하고 아픔을 나누고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 P159

산책은 일부러천천히 걷는 일이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다. 천천히 걸어야 주위를 볼 수 있고, 느리게 걸어야 나를 만날 수 있다. 
- P162

작은 인간이 찾아와 미친년처럼 혼자서 쫑알대니 성가실까 싶어 잠시 입을 다물고 기대선다. 대답이 없어도 좋다. 기대선 나에게 초록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가 이미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해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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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이재황 (옮긴이) 문학동네 2005-07-30, 140쪽, 독일(체코) 소설

🪲 <변신>의 제목 자체를 생각해봤다. ‘벌레‘가 아니고 ‘변신‘이다. 내게는 변신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변한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면 마법소녀들이 요술봉으로 휙 변하는 것처럼. 그런데 책 속의 변신은 어느 날 갑자기 내린 일종의 저주에 가깝다. 그런데 주인공 그레고르는 상당히 자기 자신이 벌레로 변한 모습을 잘 받아들인다. 내적 갈등이 거의 없다. 그래서 든 나만의 어이없는 생각. 그레고르가 정말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지만, 사실 지쳤던 게 아닐까. 여동생을 음악원에 보내고 싶어 하는데 여동생은 그냥 어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몸은 멀쩡하지만 아무 일도 안 하시고, 어머니도 딱히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한쪽 마음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말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알아들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벌레가 되는 것이,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나 치매 환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도 환자가 된 가족 구성원을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하는 상황이 많지 않을까란 무섭고도 슬픈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도 너무 막말을 하지 않았었나 하는 죄책감과 함께. 어느 날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게 어떤 반응일까. 반대로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변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까.

🪲 내가 그레고르처럼 만약에 변했다면 어떻게든 다시 되돌아올 방법을 생각했을 듯. 가족이 변한 나를 이해해줄거란 판단은 안 하지 않을까. 무엇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이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레고르의 가족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 상황에서 따뜻한 가족이 가능할까? 가족 개개인이 마음이 있어도, 노력해도 쉽지는 않을 듯 하다. 가족으로서 도덕적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 같이 모임을 한 분의 소감이 마음에 팍 꽂혔다. 그레고르는 가족과 회사에는 성실했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 했다며, 남을 위해 사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도 중요하다는. 모임을 나누고 정리를 하면서 다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삶은 어떤 삶일까? 삶에 성실하다는 건 무엇일까? 부조리한 삶에도 성실해야할까? 답은, 아직 모르겠다. 충실히 살며 깊게 고민해봐야 겠다.

🪲 나누고 싶은 구절

˝내쫓아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저것이 어떻게 오빠일 수 있겠어요?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나가주었을 거예요.
114p

#문학을낭독하는사람들
#문낭사
#빈칸놀이터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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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좋은 유년기를 보냈단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유년기를 보낸 사람도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쉽지 않지. 그래도 난 확신해. 잘못된 부분을 알아채기만 하면 거기에서시작할 수 있어. 다른 방법으로 말이야."
"다른 방법... 더 나은 방법으로 말이죠?"
"맞아. 하지만 쉽지는 않아."
아네뜨는 단호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쉬우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쉽게 체념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지.
- P170

그러니까 심란할 때는 아무거라도 가만히 보자. 가만~~히 보면 인생은 참 아름잡다.
- P174

"네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나누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야. 우리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아무도 몰라.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베풀고 나누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마치 수면 위의 잔물결이저 멀리까지, 우리가 알 수 없는 곳까지 닿는 것처럼."
- P181

결론은, 죽음이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반드시 유형·무형의 것이 뒤에 남는다, 꼭 엄마아빠가 아니어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받고 있으며, 꼭 핏줄이 아니어도 가진 것을 이어가게 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줄리는제게 할아버지의 연필을 선뜻 주었던 것 아닐까요?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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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가장 좋은 계절이잖아.
맞아. 모두 여름을 기다리면서 살지.
예쁜 이름이야.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야.
햇살, 바다, 모래, 호수, 나무 그늘, 풀벌레, 지푸라기 모자, 수박, 파라솔, 아이스티, 레이스 커튼... 여자들은 여름의 이름들에빠져들었고 나는 아네뜨의 회색 소파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한없는 여름 예찬에 귓불이 더워 왔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 이 계절의 이름이든, 나라는 사람의 이름이든 상관없었다.
- P71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것을 하지 않는 일정도 그렇다. 오늘허니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면, 내일은 할아버지의 유품을, 다음 날은 아네뜨의 가족사진을 본다든가 하는 식이다. 우리의 일정은 오후 5시면 끝났고, 간단한 저녁을 지어 함께 혹은 따로 먹은 후, 곧장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져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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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어린애였던 나를 휘어잡았던 바로 그 현기증이 어른이된 나의 눈을 캄캄하게 만들었어요.
- P361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인간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필연적으로 그러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행위나 원칙들을 선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나 자신이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P362

"그렇지만 말입니다.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자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것입니다."
- P368

물론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 P369

손바닥 밑에 바윗돌의 울퉁불퉁한 감촉을 느끼는 리유의 마음속에 이상한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 P370

한편, 한 인간을사랑한다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님을, 적어도 사랑이라는것이 자신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것이못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와 그는언제나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 P417

그리고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울지말라고 하고,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몹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는 다만 자신의 고통이 새삼스러운 것은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여러 달 전부터, 그리고 이틀 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똑같은 아픔이었다.
- P416

어떤 의미에서는 페스트가 너무나 별안간에 끝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그는 얼떨떨했다. 행복은 전속력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일들은 기대하던 것보다 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랑베르는 모든일이 일순간에 복구될 것이고, 기쁨은 음미해 볼 겨를도 없이닥쳐온 불지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22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유는 모든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442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고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43

이로써 우리는 <페스트>가 표면에 드러내 보이고 있는 거부와 ‘부정‘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하나의 ‘긍정‘이 감추어져 있음을, ‘반항‘ 속에는 ‘행복에 대한 조바심‘이 전제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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