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 P7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 

- P9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며 따라서 포괄적인 결론이다.
- P9

그런 갈등이 어느 정도 깊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혼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묘하게도 나는 그에게 연민이 일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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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지만 "완성된 사람이 책을 쓰는게 아니라 책을 쓰며 완성해 가는 겁니다"라는 말에 용기를 내게 되었다.
- P10

느리고 모자라면 알아가는 재미가 훨씬 많다.
변명 같지만 난 좀 느리게 가고 싶고 즐거울 정도만 하고싶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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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찰란 피크닉
오수완 (지은이) 민음사 2024-08-23, 372쪽, 한국소설

🎄 표지가 그냥 트리인 줄만 알았다. 책을 절반 가까이 읽을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다가 문득 ‘아찰‘임을 깨달았다. 아찰이 책 속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짠했다. 내 가족이 아찰이 된다고 하면, 등장인물들은 좀 무정하게 나온다. SF인가, 뭐지?, 라며 내게 질문 하다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님도 알아버렸다.

🎄 현실에 있는 것들이 그대로 책 속에 보이니까 SF 같지 않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그냥 지금을 말하는 이야기였다. 재미있다고 말하기에는 내용의 깊이에 조금 미안하지만, 그랬다. 나의 재밌었다는 건,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새롭게 이야기를 말하고,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2D 만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 아찰이 되는 것을 비롯한 책 속 상황들. 기본적으로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 속 부모들은 상당히 무능하거나, 자녀에게 공감을 하지 못하거나, 자녀에게 희생을 한다고 착각을 하면서 아이를 학대를 한다. (당연히 전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자기만족이나 착각, 잘못된 방향의 희생도 혹은 또 다른 학대일지도. 나는 못했으니까, 내가 괴물이 될 테니까 너는 괴물에선 안 된다는 방식, 과연 이게 사랑일까?

🎄현실의 부모들도 비슷하지 않나. 내가 희생해서 너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 이런 방식이 행복일까. 교육에서 시작해 온전한 삶도 들여다보는 이야기였다. 사실 교육이란 건 삶을 배우고 익히는 거니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작가가 질문을 던지는 느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면 헤임 자체도 결국 아찰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구역이다. 누군가의 희생, 댓가 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과연 SF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뻔한 질문이면서도 선뜻 대답은 어렵다. 작가는 고단수다. 우리 시스템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살고 싶니, 어떻게 하는 게 맞니라고 돌려 묻는다. 그것도 쉬워 보이는, 청소년 소설 같기도 만화 같기도 한 이야기로. 교육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시대에 던지되,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미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꽤 잔인하다. 아이들은 왜 우리는 아찰이 되는지 계속 고민한다. 그리고 아찰들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이 사회 시스템 자체가 아찰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사회고, 상위층 어른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결국 아찰란 피크닉에서 정상까지 완주한다는 건, 아찰란의 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일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하게 되는 일종의 성인식이다. 받아들이면? 이 더러운 세상, 아찰들이 어디 갔냐면 바로 이렇게 있었어, 하면서 공범되는 거지. 그래서 이 소설은 잔인하다. 그래도 작가는 뭔가 희망을 얘기한다. 서로가 구원할 수 있다고. (그건 믿어요.)

🎄 여담. 피크닉이 그 피크닉인지 몰랐다. 진짜 피크닉이 같이, 아님 운동회에서 오래 달리기나 계주 달리기 하는 건 줄 알았지. 그건 유격 아닌가. 그리고 아찰은 처음엔 누구도 못 피하는 죽음이라 생각했다.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지만, 전반부는 죽음으로 받아들여도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하나 더. SF 영화, 특히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가 나오는 영화들은 꼭 나의 현실이 될 것 같은 여지를 준다. 음, 또 하나. 파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우느라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아란과 파보의 장면에서 울었다. 아란보다 먼저. 파보가 우리 아빠처럼 느껴졌다.

🎄참 쉬운데 많이 어려운 질문들을 하는 책.


🎄 나누고 싶은 구절들

🌱내가 나쁜 딸이어서 미안해.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하지 않아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해서 미안해. 냉정하게 굴어서, 그모든 것들 때문에 미안해. 아란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말들보다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54p

🌱한참을 고민하다 제목 쓰는 칸을 펜으로 검게 칠해 버린 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썼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90p

🌱나중에 보니까 허공은 엄마와 나 사이에도, 출발선과 결승선 사이에도 있더라.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도.
그게 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말 몇 마디 한다고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200p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면 바보가 되고,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으면 악인이 되지. 분노해서 뭔가 행동하려 하면 추방당하고, 분노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끝내 아찰이 되는 거야. 
226p

🌱사람으로 살려는 동안에는 우리는 사람이야.
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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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를 산책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천천히 걷던 어느날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다정하게 눈에 들어온 것들을 무심히 편안히 관찰하다가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산책은 무겁지 않고 술술 가벼운 이야기지만, 그곳에는 가리워졌던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마음이 들었다.

🚲 특별히 시선을 붙잡았던 이야기. 왜 나는 나보다 어른들이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사실 맞지. 나이가 있으니까. 다들 엄마아빠가 있었고 유년시절이 있었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그리워져 슬펐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갔을 때 대문 앞에서 ˝엄마! 엄마!˝ 소리쳐 불렀다. 엄마의 대답이 들리지 않으면 빈집인 것이다. 엄마가 없으면 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열린 대문이어도 선뜻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툇마루의 시커먼 그늘아래에는 무서운 괴물이 나를 기다렸다가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잡아먹을 것 같았다. 71p 글_썽)

🚲 나와는 달라서 시선이 가던 이야기. 백송희 작가님의 글은 산책을 하는 이야기에서 약간의 우울함도, 빛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청춘도 느껴진다. 편의점 키워드에서 알코올중독이라기엔 억울하고 할 말이 많다며 소주를 사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 한 말이 언뜻언뜻 보인다.(그곳에는 항상 나와 비슷한 외로운 나방들이 있었다. 배가 굶주린 건지 사람에 굶주린 건지 모를 나방들과 같이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돌다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나왔다. 
86p 백송희)

🚲 열네 분의 조금은 많다 느껴질 공동저자가,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무려 오십여 개의 동네 산책에서 만날 만한 키워드를 가지고 나누어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각 글은 강렬함을 담아내기엔 분량이 적고 일상에 가깝다. 일상을 담아낸 글. 이 말은 각자의 취향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표현. 그러나 일상이라해서 그저 잔잔한 글은 아니다. 울컥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며, 답답하기도 하다. 산책은 원래 일상적인 시간에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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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누군가 내 삶의 안내 표지판을 제시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인생이 재미없지 않을까. 길을 알려줄 인생의 안내 표지판은 내가 그려나가면 된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만의 속도와 스타일로 말이다.
- P20

이제 그 파란 하늘과 구름 사이에서도, 따뜻한 볕을 마주할 내일을 기다린다. 내가 있는 곳, 너희들이 있는 곳, 모두가 있는 이 세상에, 상냥한 온도를 가진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며.
- P30

행복해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소원이 있다면 시간을 멈춰 달라고 빌고 싶었다.
왜 그동안 엄마의 "시장 가자", "놀러 가자", "산책 가자"라는 말을 무시해 왔는지, 빠르게 흘러간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 P39

다 왔을까 싶어 도착한 곳이, ‘아뿔싸 막다른골목이다.‘ 지각이다. 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길이 없음을 두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하는지 9살 인생에 제대로 배웠다.
- P53

퇴사에 수많은 이유가 붙겠지만 팀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길이, 팀장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걷는 길이 힘들었다. 그런데 퇴사하고 내려오니 한없이 가벼웠다. 산에 정상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이제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고 있다. 
- P59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갔을 때 대문 앞에서 "엄마! 엄마!" 소리쳐 불렀다. 엄마의 대답이 들리지 않으면 빈집인 것이다. 엄마가 없으면 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열린 대문이어도 선뜻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툇마루의 시커먼 그늘아래에는 무서운 괴물이 나를 기다렸다가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잡아먹을 것 같았다. 화장실 문은 내게 덜컹덜컹 큰소리를 쳤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가 올 때까지 눈물을 참으면서 기다렸다. - P71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편의점의 밝은 조명은 항상 나에게 안전을 보증해 주듯 날 불렀다. 막상 걷다 보면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언젠가 닿을 그 불빛을 보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그곳에는 항상 나와 비슷한 외로운 나방들이 있었다. 배가 굶주린 건지 사람에 굶주린 건지 모를 나방들과 같이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돌다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나왔다. 
- P86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나의 소중한 모습들.
그동안의 시간들이 스며든 공간들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과 장소에는 나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 P150

‘내가 쓰는 말,
내가 쓰는 글이 곧 나이듯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공감하고 아픔을 나누고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 P159

산책은 일부러천천히 걷는 일이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다. 천천히 걸어야 주위를 볼 수 있고, 느리게 걸어야 나를 만날 수 있다. 
- P162

작은 인간이 찾아와 미친년처럼 혼자서 쫑알대니 성가실까 싶어 잠시 입을 다물고 기대선다. 대답이 없어도 좋다. 기대선 나에게 초록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가 이미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해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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