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너무 너무 어려웠다. 처음엔 표지만 보고 내 스타일이라(난 그런 류의 이유로 책을 택하는 어린 양이다), 중간에는 억지로, 마지막은 오기로 읽었는데, 그건 책의 문제가 아니고 당연히 나의 문제였다. 아직 나의 독서력이 부족할 뿐. 실제로 작가 슈바르첸바흐는 지금 스위스에서는 연구가 활발한 사랑받는 작가라고 한다. 그저 내 사랑이 부족했을 뿐. 이 짧은 작품에는 ‘한 여인을 보다‘라는 짧은 단편과 ‘페르시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조금 더 긴 단편, 두 편을 담고 있다. 난해한 점이 많다. 두 작품 모두 사건보다 의식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를 중심으로 쓰였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 우울, 동성에 대한 사랑이 강하게 투영된 자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건 나의 이해나 느낌이 아닌 옮긴이의 말에 나와있다. 사실 옮긴이의 말과 책을 빌려 준 교환독서 메이트의 미리 올린 독후감이 없었다면 굉장히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 <한 여인을 보다>에는 극도로 예민한 젊은 여성인 화자 ‘나‘(화자)가 스위스 산 속 호텔에 머물다가 우연히 한 중년 여성(에나 베른슈타인)에게 강하게 매혹된 간단한 이야기다. 줄거리는 사실 그게 다일 정도로 간단하다. 읽는 동안 실제 중년 여성을 만난 건지, 아니면 화자의 욕망과 동경이 투사된 존재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화자는 호텔 복도와 엘레베이터에서 그 여인을 만난 후 그녀를 계속 떠올리며 집착하나, 실제로 둘 사이에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게 전부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그 시대에 (사실 지금도) 드러낼 수 없는 동성에게 느낀 사랑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당시에는 엄청 용감한 소설이다. 글을 쓸 때마다 세상 모두를 배려하는, 사실 눈치를 본다는 게 맞는 나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 <페르시아에서의 죽음>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실제 시간 순서는 2부가 먼저 일어난 사건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사건보다 의식이 중심이라 줄거리가 잘 안 잡혀 두 번은 읽어봐야 알 것 같다. 다만 현재로서는 재독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역시나 작가 자신을 투영하는 화자 ‘나‘는 유럽에서 왔고 현재의 이란, 그 시절 이름 페르시아를 여행한다. 화자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현재의 환상과 과거의 기억이 계속 뒤섞인 채 반복된다. 화자는 2부에서 잃어버린 동성 여인 ‘잘레‘에 대한 상실로 1부에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여행을 한다. 화자는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오히려 죽어가던 연인 잘레에 대한 폭력이지 않을까 하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을 나중에 공포가 아닌 안식처럼 느끼는 것 역시, 현명하게 삶을 통찰했다기 보다는 그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만 느껴졌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게는 화자가 금쪽이였다. 부자인 부모님이 있기에 나오는 배 부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만약 화자와 같은 상황의 누군가 있다고 하면, 나는 매우 멍멍꼰대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마 매 삶을 죽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나의 젊었던 시절, 그리고 난치병으로 실제 죽음과 직면한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four_nya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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