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가 독일 군인인 브루노와 그레텔 남매는 어느 날 아버지의 인사이동 문제로 베를린에서 아우비츠로 이사를 하게 된다. 남매는 이 아우비츠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브루노의 방 창문에서 보이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정체불명의 장소도 이상하다. 그곳은 잔디 없는 붉은 모래가 있고 오두막 같은 게 있다. 성인, 청소년, 어린이, 모두 남자만 있는데 표정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은 이상하게도 똑같이 회색 줄무늬 옷을 입고 있다. 브루노는 그 철조망을 탐험하다가 사람들이 드문 곳에서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철조망 안에 있는 쉬뮈엘을 만나게 된다.
🧟 유태인이 아닌 독일인 시점에서, 그것도 전쟁조차 모르는 독일 어린이 시점에서 서사는 신선하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주인공 브루노가 순수하게 수용소에 갇힌 쉬뮈엘에 하는 행동도, 브루노에게 수용소의 정체를 대략 알려주지 않은 사령관 부부도. 그리고 철조망을 그렇게 허술하게 세팅한 작가도. 철조망은 전기가 흐르지 않았고 심지어 철조망을 들면 조그만 아이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이런 건 소설적 허용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자꾸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같은 시대와 장소에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보고 싶었다. 소설은 현실과 닮기도 다르기도 했다. 브루노의 아버지 랄프는 의외로 가정에선 다정했다던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가 모티브로 추정된다고 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소설 속 배경 아우비츠는 실제 장소인 아우슈비츠다. 베를린에서 온 브루노는 쉬무엘이 폴란드인이라고 듣고는 폴란드가 멀리 있는 곳 아니냐며 저 먼 세계처럼 얘기한다. 바로 브루노가 있는 곳이 폴란드인줄도 모르고.
🧟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꼭 그 시대 독일인 아니더라도. 요즘이라도. 지금 여기라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환경 이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없을까?˝ 결말은 충분히 해피하게 끝날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슬프고 처참하고, 아름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