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어린애였던 나를 휘어잡았던 바로 그 현기증이 어른이된 나의 눈을 캄캄하게 만들었어요.
- P361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인간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필연적으로 그러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행위나 원칙들을 선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나 자신이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P362

"그렇지만 말입니다.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자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것입니다."
- P368

물론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 P369

손바닥 밑에 바윗돌의 울퉁불퉁한 감촉을 느끼는 리유의 마음속에 이상한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 P370

한편, 한 인간을사랑한다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님을, 적어도 사랑이라는것이 자신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것이못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와 그는언제나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 P417

그리고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울지말라고 하고,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몹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는 다만 자신의 고통이 새삼스러운 것은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여러 달 전부터, 그리고 이틀 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똑같은 아픔이었다.
- P416

어떤 의미에서는 페스트가 너무나 별안간에 끝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그는 얼떨떨했다. 행복은 전속력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일들은 기대하던 것보다 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랑베르는 모든일이 일순간에 복구될 것이고, 기쁨은 음미해 볼 겨를도 없이닥쳐온 불지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22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유는 모든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442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고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43

이로써 우리는 <페스트>가 표면에 드러내 보이고 있는 거부와 ‘부정‘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하나의 ‘긍정‘이 감추어져 있음을, ‘반항‘ 속에는 ‘행복에 대한 조바심‘이 전제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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