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 P5
햇빛도 없고 비도없고, 아침도 저녁도 아닌, 그 어느 시간도 아닌 것 같은 회색의 날, 아무도 없는 무인 행성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아침이었다. 항상 등 뒤에 따라오고 있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문득 보일 것만 같았다. 에밀리 브론테의 시가 생각났다. - P9
아빠의 소심한 권위와 엄마의 뻔뻔한 낙심이 지탱하는 가정이란 살얼음판 같아. 한 번쯤 얼음판이 깨져보면, 바닥이 별로 깊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될 텐데. - P12
홀로 남겨진 어미가 제 발로 들어가던 바다가 잊히지 않았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할 때, 난 이제 그 어미 캥거루를 떠올릴 것 같았다. - P14
공기가 잘 닦인 거울 같아서, 내 생의 방향이 전환하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김호은, 넌 이제 엄마와 사는 거다. - P29
엄마는 무언가 묻고 싶은 것을 있는 힘을 다해 참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눈빛은 무엇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이미 답을알고 있는 사람이 문제를 찾아 헤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아직 묻지도 않은 진실을 미리 본 눈빛. - P36
잠에서 깨어 다시 디뎌야 하는 현실이 끔찍해서 무릎이 오그라들 지경이면, 우린 충분히 불행한 것이리라. 승지도, 나도, 엄마도. - P46
간혹 내가 울음을 터뜨렸던 그 바다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난 왜 그렇게 울었을까. 감당할 수 없었던 막대한 양의 몰이해가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하다. - P30
뿔뿔이 흩어진 뒤의 어느 먼 날에 다시 그날을 이렇게 떠올릴줄 알고 미리 울음을 터뜨린 것만 같은 슬픔의 현기증이었다. 그리고 비밀, 비밀도 울음의 기억처럼 갑작스럽게 가슴을 쩍 벌리며 떠올랐다. - P60
그 선물을 받을 때 여자의 가난한 얼굴이 잠시 장밋빛으로 환해졌다. 여자의 눈 속에 서양 인형의 눈 같은 초록빛이 담겨있어 나는 깜짝 놀랐었다. - P62
어른들이란, 아홉 살이나 된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제멋대로들이다. 아홉 살도 상황이 자신의 삶과 조화되지 않으면 충격을 받아 영원히 기억에 새기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것은 어린이들이 즐겨 하는, 틀린 그림을 찾으시오, 라는 놀이 같은 것이어서 붉은 색연필로 그 오류를 종이가 뚫릴 만큼 꾹꾹 눌러 마침내 검은 구멍을 내는 법인데말이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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