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 P13

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때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 때문에 저는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 P16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P17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안 돼. 나는 무(無)야. 바람이야. 텅 비었어.  - P19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더 강하게 몰아치기를 바라는 심리. 
- P38

그는 저와 형태는 달랐지만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저의 동류였습니다. 그가 의식하지 못한 채 익살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익살꾼의 비참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었습니다.
- P44

그야 그렇겠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더끔찍한 것이 있다. 욕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허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색(色)과 욕(慈), 이렇게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보아도 부족한 그 무엇. 저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인간 세상의 밑바닥에는 경제만이 아닌 묘한 괴담 비슷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P48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 P49

"나를 진짜 누나라고 생각해도 돼."
그 같잖음에 저는 닭살이 돋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수 어린 미소를 짓고 대답했습니다. 
- P56

‘쓸쓸해‘
저는 여자들의 천 마디 만 마디 신세 한탄보다 이 한마디 중얼거림에 더 공감이 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 여자들한테서 끝내 한번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은 괴상하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말로 ‘쓸쓸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의 지독한 쓸쓸함을 몸 바깥에 한폭 정도 되는 기류처럼 두르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 가까이다가가면 저도 그 기류에 휩싸여 제가 지니고 있는 다소 가시 돋친 음산한 기류와 적당히 섞여서 ‘물속 바위에 자리 잡은 낙엽‘처럼 제 몸이 공포나 불안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 P60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 P61

아무하고도 교제가 없다. 아무 데도 찾아갈 곳이 없다.
- P81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 P91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大洋)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스럽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 P96

그렇게 해서 저희는 이윽고 결혼했고, 그로써 얻은 기쁨은결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후에 온 비애는 처참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역시 바닥 모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 P104

"그렇지만 감옥에 가는 일만이 죄는 아니야. 죄의 반의어를알면 죄의 실체도 파악될 것 같은데. ......신, ......구원..
사랑.....빛, .....그러나 하느님한테는 사탄이라는 반의어가있고, 구원의 반의어는 고뇌일 테고, 사랑에는 증오, 빛에는어둠이라는 반의어가 있고, 선에는 악, 죄와 기도, 죄와 회개,
죄와 고백, 죄와... 아아, 전부 유의어야. 죄의 반의어는 대체뭘까?"
- P113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P129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호리키의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도 저항도 잊어버렸고, 자동차를 탔고, 여기에 끌려와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저의 이마에는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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