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묘한 거리와 누구보다 버팀을 모두 주고 받았던 후배가 선물해 준 책을 이제 읽었다. 목차를 보고 갸웃거렸는데 역시나 오래전 읽었던 ‘잘가요 언덕‘이었다. 절판된 책을 개정한 작품이 이 책이라 한다. 그러나 난 책의 결말까지 완독하는 순간에도 다행인지 어처구니 없는건지, 전에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 나의 어린이 시절 본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최초이면서도 지금까지 인생 최대 일제 강점기에서 짓밟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 뿐 아니라 ‘역사속에서‘가 맞는 표현일 듯. 그 때 내 손에 꼽는 충격적인 몇 장면 중 하나는 그 악질 스즈키형사가 해방 된 조선에서 여전히 높은 직급의 경찰이 되어있던 것. 주인공 하림이 너가 왜 여기 있냐며 울분을 토하는데, 악질 친일파는 여전히 높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한 주인공들은 비참했었다. 충격이었다. 너무 얘기가 딴 곳으로 갔구나.

🐯 이 책을 읽으며 주권을 뺏긴 나라의 평범한 사람의 삶을 생각 해본다. 정말 순이가 용이와 잘 도망가기를 바랬는데, 그 시절 그런 기적은 없었겠지. 그래도 이런 결말이라니. (정말 기억이나지 않았다). 제일 현실적이며 여운있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결말이겠지만.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평범한 일본인은 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알았을까? 일본군 대위 가즈오의 편지가 없었으면 이 책의 여운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듯. 어머니께 보내는 첫 편지만 해도 군인으로 자청했던 가즈오의 긍지가 보였으나, 나중엔 고민하고 당황스러워하다가 결국 전쟁과 범죄는 다르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이 었을까, 현명했을까. 결국 어이없는 누구도 알지 못할 죽음과 불명예를 얻었지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미 하나의 캐릭터로 완성된 용이보다 더 마음을 움직일수도.

🐯 순이가 용이에게 말한 용서의 의미는 무엇이며,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무엇일까? 순이는 용이에게 백호가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별을 보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고 한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고 현실은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기에 용서를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 할머니들이 겨우 몇 분 생존해 계신다. 순이라면 일본군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 일본군에는 악랄한 군인들도, 가즈오의 부대처럼 농사 짓다가 오던 군인들도 있다. 스즈키형사처럼 모든 조선인이 선하거나 악하지 않듯, 일본 역시 그러하다. 현실에서의 나의 용서. 그저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 서로의 어긋남이라면, 아름다운 거리를 두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현실의 상황은 그 시대같은 처절함은 아닐테니.

🐯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 인간들끼리 공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책어 뒤에는 일본군과 조선의 이야기지만 앞에는 자연과 인간 있다. 육발이가 죽고 새끼 나올때 마음이 내려앉았다. 황포수가 발을 잘랐을 때 ‘서걱서걱‘이라는 표현이 너무 소름끼쳤다. 인간의 기준에서 유해한 생물과 무해한 생물이 결정되니 공존이 쉽지 않다. 그리고 나 역시 많은 경우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씁쓸하지만. 자연과도, 인간끼리도더불어 살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해야하는가. 우리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는 적일까? 우리에겐 왜 연민이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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