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格)이 수필인가 한다. 
- P52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마지막 십분지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 P53

엄마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장롱에서 옷들을 꺼내더니 돌아가신 아빠 옷 한 벌에엄마 옷 한 벌씩 짝을 맞춰 채곡채곡 집어넣고 내 옷은 따로 반닫이에 넣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슬퍼졌지만 엄마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후 얼마 안 가서 엄마는 아빠를 따라가고 말았다.
- P66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엄마와 나는 숨기내기를 잘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엄마를 금방 찾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있어야 나를 찾아냈다. 나는 다락 속에 있는데, 엄마는 이방 저방 찾아다녔다. 다락을 열고 들여다보고서도
"여기도 없네" 하고 그냥 가버린다. 광에도 가보고 장독 뒤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하도 답답해서 소리를 내면 그제서야 겨우 찾아냈다.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 P67

나는 오만 원, 아니 십만 원쯤 마음대로 쓸수 있는 돈이 생기는 생활을 가장 사랑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버리지 않고, 나의 마지막 십분지 일이라도 남겨서 자유와 한가를 즐길 수 있는생활을 하고 싶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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