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는 처음에는 놀라운 분량을 필사했다. 마치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것처럼 문서로 실컷 배를 채우는 듯했다. 소화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법도 없었다. 낮에는 햇빛 아래, 밤에는 촛불을 밝히고 계속 필사했다. 그가 쾌활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 - P27
그런데 바틀비가 그의 은둔처에서 나오지 않고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당황했을지 한번 상상해보라. - P29
사람이 전례가 없고 몹시 부당한 방식의 위협을 받으면 그 자신이 지닌 가장 분명한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 이것은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모든 정의와 이성이 반대편에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자리에 누구든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이 자신의 비틀거리는 마음을 지지해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 P34
아, 행복은 빛을 유혹하지.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해. 반면 불행은 멀리 숨어 있지. 그래서 우리는 불행이 없다고 생각하고. - P48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 P50
명백한 사실은 이제 그는 내게 목걸이로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감당하기 괴로운 맷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그에게 동정이 갔다. - P59
핵심은,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가정을 내가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는 편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정보다는 선택과 관계있는 사람이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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