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악의 없이도 이곳에선 그래볼 수 있는 듯했다. 진짜가 아니니까. 쓰레기나 음료수를 함부로 쏟아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대미지가 없나? 
- P109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외롭다는 걸 알아차렸다. 분명 이방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공간이 아마도 미래의 에스엔에스일 텐데.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자리에 가상현실 채팅 공간이 들어설 텐데. 그 세계에 나는 얼마나 접속하게 될까. 중요한 이야기와 궁금한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모인다면 어떨까. 과연 좋은 일이 끔찍한 일보다 많이 벌어질까.
- P110

우주에 온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떻게 될까. 여기에서 안전봉을 놓아버린다면 말이다. 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에 추진장치가 있어.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멀리 가봐도 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 그말은 왜 언제나 용기가 되는 것일까.
- P113

가상현실에서 돌아온 내 몸 다치기 쉬운 몸. 느리게 배우는 몸. 이 몸으로 여러 겹의 리얼리티를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을까. 진하를 꼭 껴안으며 예감했다. 다가올 미래에서 나는 도태될지도 모르겠다고.
- P115

사랑도 우정도 실은 번갈아가며 아기가 되는 일인지도. 나를 어떻게 할지 너에게 맡겨버리는 일인지도. 자신을 돌볼 특권을 서로에게 바치는 동안 우리 인생은 지극히 타의 주도적으로 흐른다. 나는 그의 손안에서, 그는 나의 손안에서 마음껏 어려진다.
- P122

탐이가 죽은 지 일 년이 다 되어가.
나는 이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중이야.
- P127

아프게 배운 건 잘 잊히지 않아. 늑대와 고양이의 죽음에서 배운 것들. 이 배움은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게해. 동물들의 각별한 형제인 너. 강하고 약한 너. 결점투성이인 너. 절대로 영원하지 않을 너... 너무나 유한한 너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지. 나중에 아프더라도 지금은힘껏 그래야지.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싶어.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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