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글 복붙...냥..


😊 니체는 어렵다. 그런데 있어 보인다. 뭔가 알 것 같은 무언가, 잡을 것 같은 무언가를 알지도 잡지도 못하겠다. 이건 니체 입장에서 바라는 게 아니다. 니체는 아는 게 아니라 느끼길 원했고, 아는 것으로 도피는 약해지는 거라 했으니. 니체는 일단 나에게 설득은 실패한 것 같지만, 나는 니체의 초기, 중기, 후기 작품을 읽어보기로 했다. 니체는 여전히 내겐 매력적이므로.


😊 온라인 독서 모임 중, 내 글 정리

< 1주차 10/30 – 11/5>
~60p
이 책을 읽기 전에 학문의 분류
들어가는 글
가장 불행한 존재인 인간과 『비극의 탄생』
왜 삶은 고통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음악은 우주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표현이다

마음에 남은 구절 1:
˝비극은 세계 내의 그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생을 유희하듯이 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이 세계를 긍정하면서 춤추듯 살아간다.˝
10p

이유, 소감 1:
고통과 고난이 있는데 어떻게 놀고 즐거움을 알듯이 살아갈까 싶지만... 니체가 지향하는 인간이 선인, 악인의 개념이 강한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니체의 글을 아직 제대로 본 게 없으나, 내 느낌에는 무조건 긍정적인 게 아닌, 고통과 고난의 바닥을 찍어봤기에 수용하고 나온 긍정이 아닐까 싶다.

마음에 남은 구절 2:
그러나 자신보다 약하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 군림하는 강함을 니체는 강함이라고 부르지 않고 비겁함이라고 부른다. 
12p

이유, 소감 2:
니체도 오해를 받았었다니. 지금도 강함과 비겁함을 구분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독자적인 철학이라도 전통 속에서 생겨난다. 물론 그것은 전통과의 대결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개척해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7p

칸트가 말했듯 철학의 모든 물음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23p

『비극의 탄생』은 예술을 실마리로 인간과 삶의 방향과 의미를 탐구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세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세계-내-존재‘다. 이것은 어떤 사물이 어떤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이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세계에 던져진 채로 세계에 순응하거나 그것과 투쟁하거나 그것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6p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용어를 태양과 같은 밝음, 이러한 밝음 아래에서 모든 사물이 드러내는 균형, 절도, 질서, 명료한 형태 그리고 국가의 도덕이나 법률, 아름다운 가상 이러한 아름다운 가상을 형성하는 예술적 능력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43p

아폴론이 밝음과 절도 그리고 평정을 상징한다면,
디오니소스는 밤의 어둠과 혼돈의 심연 그리고 끊임없이유동하고 변화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44p

 아폴론적인 것은 남성적인 절도와 균형 그리고 엄격함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여성적인 조화와일치 그리고 부드러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44p

『비극의 탄생』에서뿐 아니라, 니체의 사유 전체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디오니소스는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에는 무성해지며 가을에는 시들고 겨울에는 모든 활동이 중단되지만, 다시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유희하는 세계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니체는 우리에게도 이런 생명력을 가지고 유희하듯 살 것을 권한다.
45p

마음에 남은 구절 3: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두 예술 원리는 각각
‘꿈을 꾸려는 충동‘과 ‘도취를 맛보고 싶은 충동‘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충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49p

이유, 소감 3:
나는 아폴론적인 걸 지향하고, 디오니소스적인건 감히 도달 못하는 수준이라 정말 멀리서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정말 천재는, 예술은 미쳐야 나올 수 있겠지.


< 2주차 11/6 - 11/12 >
61~95p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
내 안의 비극적 영웅을 깨우다

마음에 남은 구절 1,2:
이러한 욕망은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이성을 자신의 도구로 만든다. 욕망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알아낼 것을 이성에게 지시하는것이다. 66p
&
 또한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인 논거에 입각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변호하기 위해서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것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67p

이유, 소감 1,2:
연속된 페이지에 내용이 공통적인거라 묶어 보았다. 이성이 욕망보다 더 객관적이고 안정된 감정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니체는 그 반대라고 얘기하는 것이 너무 색달랐다. 망나니(?)에 불안정해 보이는 형이 알고보니 똑똑한 동생을 조종하는 느낌이랄까. 그에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의 그럴듯한 합리적 이유도 알고보면 우리의 감정, 욕망을 그럴듯하게 하기위한 도구라니. 사실 살다보면 사회, 정치, 커뮤니티에서 많이 보고 있는 모ㅡ습이다.

마음에 남은 구절 3 , 4:
쇼펜하우어처럼 니체도 개체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일자로서의 세계의지는 내적인 갈등과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세계의지가 겪는 내적인 갈등과 고통의 원인을 쇼펜하우어와 전혀 다르게 파악한다. 쇼펜하우어는 그 원인이 충족되지 않는 무한한 욕망과 그로인한 결핍감에 있다고 보는 반면, 니체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자신의 창조적인 생명력을 세계의지가 발산하지 못하는 게 원인이라고 본다. 73p
&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차이는 비극의 본질에 대한 견해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세상의 허망함을 깨닫고 자신의 욕망을 부정할 것을 가르친다. 이에 반해 니체의 철학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넘치는 힘 때문에 고통과 고난을 찾으면서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는 자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비극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세상과 욕망에서 등을 돌릴 것을 가르치는 반면, 니체의 철학에서는 비극의 주인공처럼생명력으로 충만한 존재가 될 것을 가르친다. 75p

이유, 소감 3,4:
연속된 페이지에 내용이 공통적인거라 묶어 보았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니체의 철학, 특히 영원회귀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비극의 탄생과는 이어지는 철학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책의 개체들은 세계와 충돌이 있고 고통 받는 가운데서도 살아있는 느낌이다. 니체 관련 책을 더 읽으면 언급한 책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마음에 남은 구절 5: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쇼펜하우어에게만 존재하는 염세주의가 아니라 당시의 유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장차 유럽 전역을 지배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 대한 니체의 대결은 단순히 쇼펜하우어 개인과의 대결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흐름과의 대결이었다.
79p

이유, 소감 5:
당시 역사, 문학, 철학을 하나로 묶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듯.

마음에 남은 구절 6:
더 나아가 아폴론적 예술이 구현하는 아름다움과 절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근저에는 삶의 고통과 허망함에 대한 인식이 깃들어 있었다. 즉 그리스인들은 삶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유달리 강했기에, 올림포스 신들과 같은 찬란한 꿈의 가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폴론적 예술은 삶의고뇌를 강렬하게 느끼는 디오니소스적인 성향에서 나온것이다.
85p

이유, 소감 6:
극과 극은 다르지 않구만...


< 3주차 11/13 - 11/19>
96~160p
예술을 통해 삶은 정당화된다
비극을 통해 생명력의 고양을 경험한다
우리에게는 고통을 감당하는 힘이 있다

마음에 남은 구절 1&2 :
바그너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혁신은 그리스의 문화와 정신을 기준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그너는 그리스 문화의 정점을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찾았다. 이들 작품이 자유롭고 강력하며 아름다운 그리스적 인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강하며 아름답다˝라는 말은 바그너의 책들에서 거듭해서 나온다. 
107p
&
비극은 삶의 비참함과 허망함을 표현함으로써 욕망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주는 게 아니다. 비극이 주는 메시지는 건설과 파괴를 거듭하면서 놀이하는 세계의 충일한 생명력을 닮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생명력은 운명의 장난으로 급격하게 비상했다가 급격하게 추락해버리는 비극 주인공의 삶으로 나타난다. 비극 주인공은 비참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122p

이유, 소감 1,2:
107p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를 몰라서 찾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는 비극의 저자들이었다. 프로메테우스라던가 오이디푸스왕 같은. 어떤 작품을 지었는지 찾고보니 비극이지만 자유롭고 강하고 아름답다라는 말을 알 것 같다. 비록 결말은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122p) 강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아름다움...

마음에 남은 구절 3:
그리스인들은 경쟁과 투쟁을 인간사회뿐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로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에서 잘 드러난다. 모든 것이 경쟁과 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우주가 바로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우주였다. 경쟁과 투쟁이 사라진 세계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라 죽은 세계라는 것이다.
129p

이유, 소감 3:
조화와 평화를 인정하지 않는듯한 사상이 지금 시대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결국 조화와 평화를 핑계로 무력하고 죽은듯이 잠잠한 상태가 아닌 끊임없이 생성하는 사회를 원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과잉 경쟁도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무기력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필요한 현대인이 많을 수 있는 사상으로 느껴진다.

마음에 남은 구절 4:
이에 반해 악의적인 힘을 향한 의지는 자신보다 약한자들만을 찾아서 괴롭히고 지배하려는 의지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갑질‘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자기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강함을 손쉽게느끼고 싶어 하는 비겁한 의지다. 자기보다 강한 자와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고양하거나 강화하려고 하지 않기에 아무런 발전도 없다.
세상에는 흔히 악의적인 의지가 판치기에 이 세상은 비극이다. 
130p

이유, 소감 4:
니체는 이런 의지를 투쟁과 강함이 아닌 비겁함으로 봤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비겁한 악의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비극을 변명하지 않겠다!

마음에 남은 구절 5:
니체는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아폴론적인 가상은 서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스인들은 다른민족들과는 달리 삶의 고통과 고뇌를 극히 민감하게 느끼는 민족이었기에, 고통과 고뇌를 견디기 위해 올림포스 신화라는 환희에 찬 신들의 질서를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인들이 올림포스의 환상적인 세계로 도피해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인들은 신들도 인간과 동일한 삶을 산다고 봄으로써 인간의 삶을 정당화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들었다.
138p

이유, 소감 5:
그렇구만!

마음에 남은 구절 6:
『비극의 탄생』은 니체 자신이 인정하는 것처럼 한계를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후기 니체의 사상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강력한 맹아를 가진 책이다. 후기 니체가 전개하는 힘을 향한 의지 사상은 디오니소스 신의 충만한 생명력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영원회귀 사상은 디오니소스 신을 표출하는 현상세계가 갖는 완전성에 관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초인 사상은 『비극의 탄생』에서 말하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의 화신인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60p

이유, 소감 6:
비극의 탄생을 읽어보게끔 만드는 멘트!


<4주차 11/20 - 11/26 >
161p~
소크라테스냐, 디오니소스냐
음악에서 새로운 신화가 탄생한다
참된 예술은 삶을 구원한다
Q/A 묻고 답하기
나가는 글 고대 그리스 비극 정신에서 찾은 새로운 신화
주석

마음에 남은 구절 1 :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자의 원형이다. 그는 사물의 본성을 논리적 지성을 통해 철저하게 규명할 수 있다고믿는 것과 함께 논리적 인식이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력을갖는다고 보면서, 오류를 악으로 파악한다. 지식과 추론에대한 과대평가와 함께 동정심, 희생심, 영웅심과 같은 가장고귀한 윤리적 행위까지도, 그리고 아폴론적 그리스인이 소프로슈네sophrosyne, 즉 ‘사려‘라고 불렀던 ‘잔잔한 바다와같은 영혼의 고요함‘마저도 이론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162

이유, 소감 1:
소크라테스가 나오면서 비로소 니체 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과 반대되는 것과 비교, 대조를 하는것. 소크라테스는 모든것을 지식, 이성, 논리로 풀었고 니체는 의지였다.

마음에 남은 구절 2 :
소크라테스주의나 근대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사람들 사이의 모순과 갈등이 해소된 안락하고 평화로운세계를 희구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삶에 지치고 삶을 견딜 만한 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그리스인들은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삶의 현실을 갈등과 모순 그리고 비극에 찬 삶으로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166

이유, 소감 2:
안락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이유가 삶에 지치고 약해져서라는 건 어떤면에서 너무 큰 비약아닌가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내 현실을 견디기 어려울때 유토피아를 꿈꾸니.

마음에 남은 구절 3:
소크라테스적인 주지주의는 사람들의 힘을 인식으로 향하게 하고, 인식을 위한 노력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게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173

이유, 소감 3:
나 또한 지적이지 않으면서 지적 허영심이 있고, 지적인 자극을 추구한다. 이런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게 약한건가. 니체는 매력적이지만 중간중간 울컥해져 반발하고 싶다.

마음에 남은 구절 4 :
인간은 사물과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인간, 즉 힘의 상승이라는 도취에 사로잡힌 인간만이 사물과 세계를 아름답게 보며, 그렇지 않은 인간은 사물과 세계를 추하고 무가치하며 무의미하게 본다.
190

이유, 소감 4:
자신의 상태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건 맞다. 종교적 성인의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가진 게 아니라면. (하지만 그 성인이기에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에 남은 구절 5:
니체는 비극에서 영웅이 겪는 고통과 운명은 비극의 영웅조차도 무자비하게 희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넘치는 세계의지를 표현한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의지를 니체는 디오니소스 신이라고 부른다. 비극은 유희하듯이 세계를 지었다가 파괴하는 디오니소스 신처럼 세계내의 그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생을 유희하듯이 살라고 말한다. 
194

이유, 소감 5:
무조건 긍정이 아닌 강한의지에서 비극도 운명처럼 맞는다면, 고통과 고난의 생도 유희하듯.

마음에 남은 구절 6:
영원히 반복되기를 바랄 정도로 그대의 운명을 사랑하라
195

이유, 소감 6:
정말 멋있는 말. 그러나 삶은..
니체는 멋있고 마음은 가는데,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마음에 남은 구절 7 :
니체의 사상은 보통 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로나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를 엄격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세시기 사이에는 차이 못지않게 공통점과 연속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

이유, 소감 7:
초기 작품인 ‘비극의 탄생‘, 중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후기 ‘이 사람을 보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차례로 2024년에 읽어봐야겠다.

마음에 남은 구절 8 :
예술에는 다양한 흐름이 존재하며, 인간의 성격도 삶도 다양하다. 따라서 모든 예술에 타당한 예술철학이나 모든인간에게 타당한 인간학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전개한 사상은 예술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는 데 좋은 실마리가 된다.
209

이유, 소감 8:
니체의 철학이 어렵고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도 반감이 들면서도 읽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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