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은 백 년 후는커녕 십 년 후,
아니 바로 다음 주의 일도 계획하지 못했다. 수몰사태 이후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만큼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P271

"어느 시대에도 서점이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으니 억울한 것도 없어요."
- P277

"그쪽에 살고 있잖아요. 이쪽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말라고요. 캐러멜로 달래질 수 있는 슬픔도 아니라고요."
- P278

완전한 고요와 평화라니. 지금까지 읽은 소설 속 인물 중가장 욕망이 크다. 그 평화와 고요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고단한 싸움을 해야 할까.
- P288

서점 옆에는 아틀리에가 있었다. 이젤과, 어지럽게 놓인 붓과 물감, 완성한 그림과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뒤섞여 있었다. 영원히 팔리지 않을 책들이 있는 서점과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그림들이 있는 아틀리에 앞에서 수경은 불가능한 세계를 바라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렸다. 여자의 말대로 인물들은 완전한 고요와 평화를 원했다. 다만 싸우지 않고 얻길 바랐다. 
- P289

수경은 그 무덤의 주인들이 누구인지 알것 같았다. 그쪽에서 파헤치고 있을 때 이곳에서는 묻고 있었다. 양쪽의 욕망은 닮은 듯 다르다.
- P290

여덟 편의 소설은 상실의 자리를 그리고 있지만 결코 황폐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살아가는 인물과 그들의 삶을 그리는 작가의 시선이 항상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선임의 소설에는 무엇을 잃었든 정확하게 슬퍼하고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의지가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정선임은 이 의지를 소설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였던 시간과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부름, 맞잡은 두 손과 따뜻한 바람, 응시하는 눈, 고작 그것뿐이지만 고개를 들게 만드는 것, 그리고 다행이었지, 하는 중얼거림까지 읽는 이에게도 믿음의 증표를 하나 둘, 여러 번 나눠주었으니 말이다. 
- P310

 이미 잃어버렸다 해도 잃지 않았다고 미련하게 믿으며, 잃어버리는 일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잃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쓰고 싶다. 계속 쓰겠다. 다시 쓰겠다. 애쓰겠다.
어디에 있든 한 사람도, 한 마리도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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