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준은 끊임없이 계산했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그만의 테마곡이었다. 암산이 잘 되지 않는 것을 핑계로 들어오는 돈은 반올림의 반올림을 해서 올리고, 나가는 금액은 반올림의 반올림으로 내렸다. 가상의 금액으로 암산에 암산을 거듭하자 제법 마음에 드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 P57

사준의 머리는 생각하는 걸 멈췄다. 벌어진 일과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서지 않았다.
- P84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이 사준을 감쌌다. 자신이 영두에게 가졌던 그 모든 감정들이,
악의와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감정들이 이렇게 부질없는 것이었다니. 
- P91

나는 늙은 인간과 산책하던길목, 늙은 인간이 좋아하던 언덕의 풍경, 가끔 몰래 빠져나와거리의 친구들을 만나던 아지트,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 P98

인간들은 다를까? 그들은 찰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쓸모있는 기계들을 많이 만들어 내니 기억의 조각을 보관하는 일쯤은 저들에게 쉬울 수도 있겠다. 허나 그렇다면, 어떻게 그 많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 P98

기억이란 건 신기하다. 체에 거르듯이 회상에 회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 잠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순간들만 남았다.
- P98

지나간 시간에 붙잡혀 사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다. 나는 그 애가 외롭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P99

나는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가 차라리 화를 냈으면 했다. 화라는 것은 감정을 드러내는 거니까 계속 쌓고 쌓다 보면 쌓아 둔 무게만큼 외로워진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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