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글 쓰는 속도도 느렸다. 좀 느리게 쓰면 어때. 그런데 문제는,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직 문장 한 개를 다 옮겨 적지도 못했는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 문장을 지워버린 뒤 다음다음 문장을 이어가는식이었다. - P61
초등학교 6학년 때, 읍내의 문화원에서 동급생과 함께 2인 동시전을 연적이 있었다. 전시를 구경 왔던 한 남자 고등학생이 방명록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심은 천심이란다. 어렵니? 나도 어렵다." 나에게 그 문구는 충격이었다. 정말로 어려웠던 것이다. 교복을 입은 그 까까머리 남고생이 나에게 준 충격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시를 경외하게만든다. - P65
장한 어머니라니, 네이밍만으로도 21세기에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또 사람을 키우는 일은 부모가 함께하는 일인데, 칭송함으로써 강요되는 모성이라는 개념 뒤에는 어떤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그런데 실제로 한 작가가 그 이유로 상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깊이 공감하던 차에 나의 엄마에게 그 상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물론 고맙게 냉큼 받았다. 칠순의 엄마가 자신의 이름으로 받는 상. 그것은 내가 내 이름으로 받는 어떤 문학상보다 탐나는 상이었으므로 사회적 편견에 저항해야 한다는 소신 따위…………… 쉽게 변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얄팍한 작가라서 죄송합니다(얼마 전부터 ‘예술가의 장한어버이상‘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 P82
하지만이제는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일을 슬프게 쓰고 싶지 않다. 반지를 끼고 잠드는 날의 생각이다. - P87
나는 단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예술가는 못 되지만 문학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고유성을 지켜주도록 돕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 는 생각을 해본다. - P96
‘문학이란 성공담이 아닌 실패의 서사‘라고 알고 있는 소설가답게 또 나는 그 예정된 실패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라지는 패자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 P103
허연의 시 「일요일」에서처럼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하는 삶과, 남의 나라에서 태어난 포로처럼 현실에 묵묵히 부역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운명을 지닌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악역을 사랑하게 된 멕시코 소년의 순정을 떠올리며. - P107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내면을 남에게 내보이고 또 설득하는일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글을 쓰다가 내가 배짱과용기가 없는 작가라는 걸 자주 느낀다. - P124
글을 마무리하기가 어려울 때는 ‘지켜볼 일이다‘와 ‘그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조심스레 주장해본다‘ 같은 무책임한 애매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P126
내 삶을 목적지가 아닌 경로로, 루틴이 아닌 지도로 그려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서른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새삼 소설가를꿈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을 쓰다보면 내가 살아온 과거가 현재의 내 안에서 함께 작동되고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 P131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된다. 나이 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은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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