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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한연희 (지은이) @greenddal
문학동네 2023-08-04, 188쪽, 시
2023. 9월 완독
🎑 시인님이 성숙한 어른인 줄 알면서도, 시집 안 화자는 왜 아이같기도 하고, 소년이나 청년 같기도 할까. 귀신을 볼 줄 아는 그런 순수함 때문일까. 시집 속 귀신은 마냥 무섭지 않다. 죽음이 있고 원혼도 있는데 무섭지 않다. 슬프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
시낭송회에서 직접 시인님의 답변으로 질문에 답을 얻었다. 버섯, 여성, 소수, 귀신 이런 어디도 속하지 못한 경계에 있는 것들에 대한 마음이라고.
시집은 잘 모르지만 단정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안쓰러움과,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도 이 시집을 선물했다.
🌈 마음에 남은 구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끝이 난 시점
거기엔
경계선이 있고
넘어서기에 딱 좋고
14 (손고사리의 손)
일상은 썩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구나
당연한 걸 늘 까먹고 말아서 이렇게 쉽게 멍들어버리는거구나
16 (딸기해방전선)
영혼의 즙이란 줄줄 새어나오는 거였어
한낮에도 이렇게 깜깜할 수 있는 거였어
서랍에서는 너무 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고
그런데도 나는 무서움을 잘근잘근 씹어본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본다
20 (공포조립)
그 옛날 무수골에 들른 왕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전부를 내려놓진 못했을 것이다.
43(계곡 속 원혼)
매년 무수골 입구에는 작고 흰 버섯이 피어나는데
그 이름은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그걸 보기 위해 사람이 몰리는 여름마다
꼭 익사자들이 생겨나 계곡은 충만해진다
44(계곡 속 원혼)
그리하여 오늘 죽은 자와 내일 죽을 자와
아니 죽지 않을 자 모두
참 다정한 귀신이 되려 노력하는 걸 보면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다
46 (광기 아니면 도루묵)
누구누구의 엄마들이 건너편에 있다
누구누구의 걱정들이 건너편에만 머물러 있다
52(녹색 활동)
반짝거리는 금빛 손잡이는 녹이 슬었고
현실주의자라고 여긴 자들은 낭만주의자에 불과했고
암막 커튼에 가려진 추악한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59 (실내 비판)
후후 불어 배고픔을 삼키려는 찰나
냄비 아래에 놓인 작은 책에서
귀신이 비집고 나온 것입니다
나의 나타샤
나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62 (나타샤 말고)
가을에는 당당히 코를 풀면 된다
참았던 화를 좀 냈다고 해서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
가을에는 오히려 사나운 호랑이쯤으로 변신해
산속에 억울한 마음을 훌훌 버리면 된다
66 (사나운 가을 듣기)
시간은 척척 앞으로 향해 가는 것 같지만
자꾸 뒤로 감기는 것이고
인간은 착각에 착각을 거듭하곤
틀에 박힌 생각을 오븐에 구워 창문을 만들어낸다
75 (잉여 쿠키)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지
오늘 태어난 예수도 그랬을걸
만백성의 사랑쯤이야 우스웠을걸
78 (질투 벌레)
위스키에 부어 넣은 약속과 보드카에 섞은 한숨을 마셔요
잔에 따른 미래가 일렁이면
괴괴하고 묘묘한 전술력 마지막 단계까지 단숨에 오르는것입니다
96 (하이볼 팀플레이)
선명한 어둠은 갑작스레 눈앞을 가로막고
햇볕에 선 모두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하느라
97 (아주 가까이 봄)
그 표면엔 내가 달라붙어 있지, 눈이 세 개 달린 모습으로,
그렇담 넌 요괴로구나. 이마에 달라붙은 배꼽을 본다. 나는살았을까 죽었을까.
103 (배꼽 속 요괴)
오늘은 다정함을 사라지게 두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
그럼 저도 계속해서 하루치의 목숨을 살려보겠습니다
128 (뚜껑에 진심)
이제야 아주 명징해져요 폭력에 이유란 건 없어요 거기에 대항할 마지막 임무였어요 내가 청록색 괴물이 되는 일은 말이죠
133 (청록색 연구)
오분전에 한 다짐은 십 년 전에 한 다짐과 같고
149 (산호를 좀먹는 여섯번째의 날)
한숨도 못 잔 얼굴로 눈을 비비는 동료 하나가
인간이 너무 징글징글한 것 같다고 말하길래
너도 그래 하고 답하고 말았어요
154 (식인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