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에 얼굴을 갖다대며 장난을 치고, 한쪽 발을 번갈아 들어올려 목욕에 협조하는 아기 코끼리의 귀여움이란 그리고 문득깨달았다. 내 현관에 놓인 구둣주걱이 본래 누구 몸의 일부였는지.
- P35

그나마 좋은 일이라면 그 구둣주걱에서 코끼리를 보듯이 깃털 베개에서 오리를 보고 가죽 가방에서 들소를 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처럼 죽음과 죽임이 개입된 ‘잘못된 만남‘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탓에 물건을 살 때 조금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다.
- P36

그리고 오랫동안 혹은 남들이 살아온 방식을 무심히 답습하는 태도가 때로 편협하고 안이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 P37

아니, 그건 아니다. 선물이란 인사를 건네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물건에 만족하고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면 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마음인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정확하게 생각하려고 애쓰는 조금 전 내 소설 주인공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자면 나는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 P44

사물의 형태와 색의 파편을 미세하게 연결시키고 왜곡해서, 문자 그대로 만 가지의 풍경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나는 그 가게에서 홀린 듯 만화경 속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 P54

금기 너머를 상상하는 것, 사소한 악의를 품는 것. ‘인간적으로‘ 둘 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제어하는 자유의지가 있다. 
- P55

친구야, 알고 있니. 내가 너의 눈을 지켜냈어. 물건을 빌려주지 않음으로써. 그러기 위해서 남의 눈을 멀게 하는 악의적인 착한 상상, 그리고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한 적극적인 무위의 노력이 필요했단다.
- P56

수잔 손택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분법에 반대한다. 선과악 사이에는 수많은 윤리적 스펙트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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