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는 내가 수사가 되기 전에 사귄 마지막 여자친구였다. 우리는두 달 정도 만나다가 미주의 뜻으로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도 우리는 한 번씩 만나곤 했다. 연인으로 만난 게 두달이었고 친구로 십 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한때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농담처럼 느껴지곤 한다. 
- P187

미주는 볼 때마다 몸이 조금씩 불어나 있었다. 건강하게 살이 찌는 게 아니라 어딘가 아픈 것처럼 부은 모습이었다. 나의 고향에서는 그런 살을 벌살이라 했다. 벌살이 붙은 얼굴에 다정한 눈빛만은 여전했는데, 그 여전함이 마음을 쓰리게 했다.
- P188

미주의 눈에 진희는 투명한 물속에 숨어 있는 작은 담수 진주 같았다. 자신을 담은 물빛만큼만 반짝이고 완전한 구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둥그렇고 부드러운 진주.
- P191

주나가 언제나 미주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존재였다면 진회는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미주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어주는 친구다. 직설적이고 조금은 거칠게 행동하는 주나와 조용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를 좋아하던 진희 사이에 미주가 있었다.
- P192

주나의 그런 장난은 언제나 미주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장난이라는 포장을 벗기고 나면 아주 작고 희미한 것이더라도 자신을 향한 주나의 악의를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아직 어린 아이의 잔인함이었을까, 아니면 애정과 악의를 동시에 느끼는 습관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 미주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나의 애정이 거짓이었다거나 허위였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뜨겁고 헌신적인 애정이었다고 말해야 옳았다.
- P193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 P202

그런데도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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