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서점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별볼일 없다는 게 아니다. 밤낮으로 고생하는 MD들도 있고, 그분들의 노고 또한 익히 알고 있다. 문제는 책 시장이 소수에 의해 획일적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 P13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10만 부씩 팔리는 사회보다도, 열 권의 책이 1만 부씩 팔리는 사회가 좋다고 본다. 히라카와 가쓰미의 소비를 그만두다라는 책에서 공감한 구절이다. 한 권의 10만 부가 아닌 열 권의 1만 부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서점이 필요하다. - P15
소규모 서점의 가장 큰 가치는 운영자의 권한과 자율이다. 경제성과 효율의 관점을 벗어나 운영자의 주관과 가치관을 서점의 운영에 반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서점의 수만큼 책 소개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거다. - P15
다만 소규모 서점이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다. 출판사나 총판에서 책을 공급받는 매입 가격과 소비자 정가 사이의 비율, 즉 공급률의 차등이다. 똑같은 책을 들여와 팔아도 인터넷 서점보다 공급률이 크게 불리하기때문에 소규모 서점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 P21
공급률 차등 문제를 좀 더 설명해 준다면? 개인적으로 파악하기로 소규모 서점들이 적용받는 공급률이 인터넷 서점과 비교하면 10% 이상 높은 거로 알고 있다. 똑같은 책을 10% 이상 비싸게 들여와서 파는 거다. 살아남기 힘들 수밖에 없다. - P23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는 공급률 문제가 아니라작은 서점의 낭만일 테니까. - P29
퇴사는 나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고민이었고, 나를 설득하는 것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까지 설득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벅찬 일이었다. - P33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먹고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책 팔아서 온전히 먹고사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서점 운영의 목표이기도 하다. 서점은 재능기부센터가 아니다. 책을 판매하는 상업 공간이다. 그러므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나부터 책 팔아서 잘 먹고 잘 살아야 더 많은 서점이 생겨날 수 있을 거다. - P37
모객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모객의 과정 또한 서점다운 모습이길 바란다. 다만 위와 같은 부가 활동을, 서점 본연의 역할 수행 가운데 현명하게 녹여내는 서점들도 있다. 부가 수익 창출과 서점 기능 수행을 균형 있게 감당해내더라. 분명 배울 점이 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잘 풀어내는 것도 능력이겠지. - P38
큐레이터의 역량에 따라 책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을 한다고 할 때 다른 맨부커상 수상작들과 소개할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폭력성을 다루는 책들을 선별해 묶어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채식을 주제로 한 책들을 함께 묶을 수도 있다. 큐레이션의 의도에 따라 함께 소개하는 책의 종류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다. 책 소개의 다양성과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이다. - P43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로 주제를 풀어가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비교적 쉽게 읽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을 계기로 더욱많은 사람들이 책을 친밀하게 느끼길 바란다. - P44
안 팔려도 들여놓는 책이 있다면? 오픈할 때부터 한 권도 안 팔린 게 대부분이다(웃음). 하지만 서가의 모든 책들은 한 권 한 권 소개하고 싶은이유가 있는 책들이다. 팔리든 안 팔리든 반품 안 한다. 사랑의 역사, 스토너,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등 모두 애정으로 들여놓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독자와 만날 기회를 주고 싶다. - P44
책을 소개받는다고 구매를 결정하는 게 일단 아니었고, 설령 구매를 생각했다 하더라도 실제 서점에 방문하기까지는 시간이 한 달은 걸리더라. 소규모 서점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게 당연하다. 일단 책을 읽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나마 책을 읽는 대다수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 - P45
여전히 책을 읽는 소수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인터넷이 아니라 오프라인 서점을 찾으며, 더욱이 구태여 대형도 아닌 소규모 서점을 찾을 이가 얼마나 될까? 하물며 굳이 먼 걸음으로 해방촌 언덕 위의 서점까지 와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 P51
실제 매출과 SNS상의 반응은 무관함을 많이 느낀다. 아무리 좋아요가 많이 눌려도 매장에 손님은 잘 안 보인다(웃음). 다만 동시에 느껴지는 건, 누적되는 잠재적인 효과다. 몇 달 동안 SNS로만 서점 소식을 듣던 손님이, 어느 날 문득 매장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면 SNS가 어쩔 수 없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 P53
돈은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일이니까 해 보자고 일방적인 협조를 요구하면 정색하고 대답하고 있다. 서점 또한 상업 공간이며,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돈이 안 되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끌고 가는 일도 분명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선택이다. 외부에서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 P55
서점을 찾아오는 여정 자체에서 풍요를 느끼는 게 아닐까? 솔직히 인터넷으로 사도 똑같은 책 아니겠나. 그런데도 굳이 서점으로 오는 건, 인터넷 도서 주문 클릭하는 것과 해방촌의 작은 서점을 찾는 발걸음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냥 내 생각이다(웃음). - P57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서점의 모습은 무엇인가? 익숙한 서점이 되고 싶다. 서점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손님들 스스로 익숙하게 아는 서점, 일방적인 가이드를 따르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점을 해석하고이용하게 되길 바란다. - P59
서점을 열기 전후 본인의 삶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삶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과장된 표현처럼 들릴 텐데 느끼는 게 정말 그렇다.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무채색으로 흐르던 삶이 선명한 색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때론 위태로울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 만족을 주는 것 같다. 힘든 일이야 물론 많지만 후회는 하나도 없다. 아직까진 (웃음). - P61
서점은 기본적으로 독자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나를 위한 공간을 원한다면 집에 있는 것이 현명하다. 이것만 미리 알고 있어도큰 도움이 될 것이다. - P61
서점이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서점이나 한번 해보고 싶은 건지 잘 고민 해보길 바란다. 잠깐 서점 시늉만 하다가, 책이 당장에 안 팔린다며 이것저것 가져다 놓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소품은 소품숍이훨씬 잘 판다. 술은 술집이 훨씬 더 잘 판다. 책을 잘 팔고 싶은 사람이 서점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 P61
언제까지 서점을 할 생각인가? 회사 다니면서 모아뒀던 돈, 몽땅 까먹기 전까지는 일단 계속 가볼 생각이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장기적인 목표는 없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게 목표다. 하루 목표도 이루기 힘들다. - P63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얘기 할 거면 나 밥 좀 사 먹게 책 한 권만 사 달라고 답하겠다. - P73
미디어가 소규모 서점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생각은? 취재 대상의 팔로워나 인지도에 편승해 보려는 기획물이 많아지는 걸 느낀다. 특정 대상을 밀어주기 위해 기획되는 취재도 뻔히 보이고 취재를 받는 과정에서 이용당한다는 기분마저 든다. 서점 운영자들 사이에서최근 들어 공유되는 생각이다. - P75
인터뷰할 때마다 공급률 문제를 꼭 한 번씩언급하는데, 한 번도 기사로 나가질 않더라. 굳이 그런 골치 아픈 내용까지 내보낼 필요 없는 것이겠지. 공급률 문제보단 서점의 낭만이 팔기 쉬운 소재일 테니까. - P76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 사진은 열 올리며 찍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몇 구절 찍어 올리면 자랑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그건 쓰레기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다면 마음에 담아야 할 텐데, 감동이 마음에 닿기도 전에 이미지로 전환해 버린다. 쓰레기 같은 감상만 남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마음이 울컥 슬퍼진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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