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페르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있고 싶었어. 그의 유명을 느낄 수 없는 곳에 하지만 막상 와보니 반만 성공이었어. 장소는 장소고, 기억은 기억이고, 인생은 망할 놈의 인생이지. - P175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보는 빙하는 매끈한 하얀색 덩어리 같았는데 이 빙하는 질감이 산 같았다. 암갈색과 흰색. 게다가 끝없이 다양한 흰색, 세상의 온갖 흰색이 다 모여 있었다. 하얀 흰색, 푸르스름한 흰색, 터키빛 흰색, 황금빛 흰색, 은빛 흰색, 투명한 흰색이 눈부시게 생생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확실히 아침 식사보다 인상적이었다. - P179
빙하가 보이는 풍경은 무엇보다도 그녀가 지구에 사는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녀와 모든 인간은 그저 지구에사는 9백만 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살면서 했던 거의 모든 일,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고 돈을 받고했던 모든 일이 그런 이해로부터 멀어지게 했음을 깨달았다. - P185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고, 상상했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면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라고 소로는 《월든》에 썼다. 또한 이 성공은 고독의 산물이라고도 했다.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그 순간 노라도 비슷하게 느꼈다. 비록 혼자된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무도 없는 자연 속에서 이런 고독은 처음 느껴봤지만. - P185
예전에 밤이 되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노라는 그 이유가 고독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고독을 느끼지못해서였다. 분주한 도시에서는 외로운 마음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마음은 인간과 인간의 연결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한 자연(혹은 소로의 표현대로 하자면 ‘야생이라는 강장제) 안에서는 고독이 다른 성격을 띤다. 고독 안에서 자체적으로 연결이 이뤄진다. 그녀와 세상이 연결되고, 그녀와 그녀 자신이 연결된다. - P185
애쉬는 SNS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외로워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들 서로 미워하는 것 같더군요." 애쉬가 말했다. "어설프게 알기만 하는 친구들로 과부하 상태라서요. ‘던바의 수‘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 P186
"그렇다니까요. 건강하지 않아요! 뇌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대면 소통을 갈망하는 거죠. 또………… 그래서 내가 사이먼 앤드 가펑클 기타 악보집을 온라인으로 구매하지 않는 겁니다!" - P187
북극곰의 눈빛에 미움은 전혀 없었다. 노라는 그저 먹이였다. 고깃덩어리. 그걸 깨닫자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면서 공포가 밀려들었다. 곡 막바지에 이르러 점점 커지는 드럼 소리처럼 심장이 고동쳤다. 급기야 노라는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게 깨달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 P192
노라는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충격은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이 짐작하는 충격과는 약간 달랐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는 충격이 아니었다. 사실은 자신이 살고 싶어 한다는 깨달음에서 온 충격이었다. - P194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린다. 경도와 위도가 얼마나 긴지 무감각해진다.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광활한지 깨닫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노라는 짐작했다. - P194
하지만 일단 그 광활함을 알아차리고 나면, 무언가로 인해 그 광활함이 드러나면,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희망이 생기고 그것은 고집스럽게 당신에게 달라붙는다. 이끼가 바위에 달라붙듯이. - P195
실망과 단조로움과 마음의 상처와 경쟁만 한가득이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은 순간에 끝난다. 어쩌면 그것만이 중요한 의미인지 모른다. 세상이 되어 세상을 지켜보는 것. 부모님이 불행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성취하겠다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노라는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배에서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보다 부모님을 훨씬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노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용서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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