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 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주체Gehorsamssubjekt"가 아니라 "성과주체Leistungssubjekt" 라고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 P23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P24
그러나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우울증의 이러한 측면은 에랭베르의 논의에서 빠져 있다. 그는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을 간과하고 이러한 폭력이 심리적 경색을 야기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 P26
그러나 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 P27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 P32
그러니까 그녀는 활동적 삶의 마지막부분에 가서 자기 의도와는 달리 사색적 삶에 손을 들어주고있는 셈이다. 그녀는 바로 사색적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무엇보다 활동적 삶의 절대화와 관련이 있으며 근대적 활동사회의 히스테리와 신경증을 낳은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 P46
사색적 삶은 보는 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전제한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과업을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 P47
여기서 니체가 표명하는 것은 바로 사색적 삶의 부활이다. 이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저 긍정하는 수동적인 자기 개방이 아니다. 사색적 삶은 오히려 몰려오는, 또는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며, 시선을 외부의 자극에 내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조종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 행위를 통해 사색적 삶은어떤 활동과잉보다도 더 활동적으로 된다. - P48
이에 반해 긍정적 힘만을 지닌 사람은 대상에 완전히 내밀게진 신세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활동과잉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형태의 행위로서 어떤 자유로운 행동의 여지도 남겨놓지않는다. 그것은 긍정적 힘의 일방적 절대화가 낳은 결과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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