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교수 뒤에 의자도 없이 서 있던 젊은 의사가 위를 올려다보며 고개의 각도를 조금씩 계속 바꾸었다. 수정은 알아채버렸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라는걸. 작은 컵을 빙글빙글 돌려봤자 컵이 커지는 건 아니에요. 수정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몇년 전에는 수정도 자주저렇게 고개를 돌리곤 했다. 눈물기관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수정이 깨우친 요령은 물이 천천히 내려가는 배수구를떠올리는 것이었다.
- P9

엄마는 그 가운데 서서 수정에게는들리지 않는 말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가장한 장례식이었다. 근사한 장례식이었다.
- P13

 최악의 상황이 오면사람들은 생각보다 강인해진다. 불행을 팔아 일자리를 얻는 것쯤은 마음에 미약한 실금도 긋지 않았다. 
- P58

허기가 심한가 심하지 않은가 느껴보려 했지만 몸속에 허기와 비슷한 것이 너무 많아 헷갈렸다. 요즘은 늘 그렇다. 
- P63

 환의는 그저 그 가게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반가웠는데 윤나는 슬퍼했다. 윤나의 그런 면이 어렵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잘 웃는 사람, 친절한 사람,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결코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 P67

. 웃지 않지만 친절한사람, 윤나는 언젠가 시에 전혀 웃지 않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에 대해 쓴 적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꼭 그 나라에서 온 것 같구나, 했던 것이다.
- P123

"세상에서 제일 우울해 보이는 토끼네요."
언젠가 윤나는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했다.
"그래서 샀어요."
그 학생이 대답했었다.

- P124

우리가 쓰는 시가, 사실은 간질의 후유증이면 어떡하지? 발작같은 것이면 어떡하지? 윤나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P126

"우린 이미 졌어요"
그제야 사람들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되겠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자."
- P133

호 선생은 별로 욕심이 나지 않는다. 발밑에서 큰 파도가 다 부서져도 좋다. 지금껏 너무 많이 가졌다. 잃어도 좋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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