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안태훈은 아들의 상해행을 대견히 여기며 노자를 보태주었는데, 황해도 산골의 안태훈 역시 상해의 치열함과 상해의 나른함을 알 수는 없었다. 안중근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 P24

안중근이 상해에서 돌아오자 문중의 원로들이 안중근을 앉혀놓고 아들을 낳은 경사를 뒤늦게 치하했다. 아버지가 죽자 아들이 태어나는 질서는 삶과 죽음이 잇달음으로 해서 기쁘거나 슬지 않았고, 감당할 만했다. 모든 죽음과 모든 태어남이 현재의 시간 안에 맞물려 있었다. 
- P26

안중근은 젖내 나는 아이를 안았을 때의 그 출처를 알 수 없는슬픔을 빌렘에게 말하지 못했다. 조선 땅에서 벌어진 외국 군대들끼리의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일본군의 의병 진압으로 날마다 산야에 시체가 쌓여가는데, 그 많은 목숨보다도 젖내나는 내 자식의 목숨 하나가 유독 안쓰러운 까닭을 안중근은 빌렘에게 묻지 못했다. 
- P32

빌렘은 안중근의 성정을 위태롭게 여겼다. 안중근은 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고 유년에서 청년으로 바로 건너온 사람처럼 보였다. 
- P33

그러하되 어떠한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내밀한 죄들을 다들 깊이 지니고 있을 터인데, 그 죄는 마음에 사무치고 몸에 인 박여서 인간은 결코 자신의 죄를 온전히 성찰하거나 고백할 수 없을 것임을 빌렘은 알고 있었다. 
- P63

안정근은 형이 가려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날 서울 도심에서 눈으로 본 일들이 형이 가려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안정근은 형이 여기에 남아서 함께 견디면서 함께 살기를 바랐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기는 마찬가지일 듯싶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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