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미안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의 죽음이아니라 그가 남긴 몰락의 산물이 궁금하다. 그는 대체 어떤시를 남몰래 썼을까. 그는 두어권의 문집에 여러편의 시를남겼다. 문학은 돌이킬 수 없다. 작가가 이미 세상과 안녕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토록 무거웠던 것이 문학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를 떠나보내고 돌연 알았다. 쓴다는 것은 너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이다(그는 아마도 지금의 나를 용납하지 않을 테다).
- P200

외출에 실패하고 돌아와 몹시 구겨졌던 몸을 조심스럽게 편다. 나는 겨우 서른이 되어서야 아무것도 깔지않고 맨방바닥에 노란 이불 하나 덮고 잠이 든다 가족들의 숨소리가 조심조심하였고 더러 한숨 쏟아져 나오던, 큰 추위 大寒 지난 바깥에서 화난 바람 불던 밤,
한 사내가 정신을 다 비운 뒤 그토록 무거운 외투 벗지 않고 잠들던 그때처럼, 우리 아버지처럼.
- P201

애쓰며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일요일에 경춘선을 타보기만 해도 알게 됩니다. 이많은 사람이, 이 세월을 허송으로 보내기 싫어서 이토록 절실하게 꼿꼿하게 흔들리며 손깍지를 끼고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웃고 떠들고눈 감고 기도하며 먼 곳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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