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미안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의 죽음이아니라 그가 남긴 몰락의 산물이 궁금하다. 그는 대체 어떤시를 남몰래 썼을까. 그는 두어권의 문집에 여러편의 시를남겼다. 문학은 돌이킬 수 없다. 작가가 이미 세상과 안녕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토록 무거웠던 것이 문학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를 떠나보내고 돌연 알았다. 쓴다는 것은 너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이다(그는 아마도 지금의 나를 용납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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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에 실패하고 돌아와 몹시 구겨졌던 몸을 조심스럽게 편다. 나는 겨우 서른이 되어서야 아무것도 깔지않고 맨방바닥에 노란 이불 하나 덮고 잠이 든다 가족들의 숨소리가 조심조심하였고 더러 한숨 쏟아져 나오던, 큰 추위 大寒 지난 바깥에서 화난 바람 불던 밤,
한 사내가 정신을 다 비운 뒤 그토록 무거운 외투 벗지 않고 잠들던 그때처럼, 우리 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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