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두 사람 다 예의가 바르다. 하지만 친절한가? 예의는사회의 윤활유이고, 친절은 사회의 초강력 접착제다. 예의있는 문화가 꼭 친절한 문화인 것은 아니다. - P306
《논어》는 지하철에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짧은 대화와 간결한 격언으로 이루어져서 역과 역 사이에서 조금씩 소화하기 쉽다. 이 책의불규칙적 리듬은 F 노선의 리듬과 비슷하다. 공자는 효의 미덕에대해 자세히 설명하다가 갑자기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한다. 이 책에 통일된 하나의 주제나 설득력 있는 생각이 없다고 결론 내리기 쉽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노선은 움직이다서다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공자도 마찬가지다. - P307
"공자상 밑에서 멈춘다. 상 아래에 중국어와 영어로 "위대한 조화의 시기"라 쓰여 있다. 이 구절에서 공자는 지도자가 현명하고범죄자가 적으며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기원전 5세기였던 당시에는 친절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개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나 대담한 상상이었다. 나는 초봄의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다. 이 완벽한 세상과, 아주 오래전에 이 완벽한 세상을 상상한 불완전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 P308
수천 킬로미터가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갈라놓고 있지만 두 철학자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공자가 죽은 기원전 479년에서 10년도 지나지 않았을때 태어났다. 두 사람 다 위치가 불안정했고, 제자들에게는 존경을, 엘리트들에게는 불신을 받았다. 두 사람 다 추측에 의문을 제기했다. 두 사람 다 지식을 귀하게 여겼고, 무지는 더욱더 귀하게여겼다. 두 사람 다 형이상학적 사색에는 관심이 없었다. - P310
공자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인 만큼 중요한 단어는 없었다. 인은 《논어》에 105번 등장하는데, 그 어떤 단어보다많은 횟수다.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자 자신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연민, 이타주의, 사랑, 어짐, 진정한 선, 온전한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번역은 ‘인간다운 마음‘이다. - P311
나는 이 부분을 읽고 한숨을 쉰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유교의이미지다. 부모를 공경하고,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문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규칙을 근간으로 한 철학. 훈훈하고 모호한 ‘무위‘ 개념으로 뉴에이지 그룹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노자가 공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당연하다. 노자가 중국 철학계의 서핑족이라면 공자는 땍땍거리는 선생님이다. - P312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서로 간의 거리는 중요한 요소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라. 우리가 자기 자신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국가로, 모든 지각있는 존재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할 때 친절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처럼 점점 커다란 원을 만들며 퍼져 나간다. 한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면 모든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다. - P314
<이매진>은 공자가 상상한 유토피아 "위대한 조화의 음악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정함은 잔인한 의도가 아닌 상상력 부족의 결과다. 불친절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며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한다. 하지만 존 레넌은 말한다. 노력하면 어렵지 않아요. - P315
하지만 맹자는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그 아이를 도울 것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측은한 마음과 행동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많은 좋은 의도가 그 사이로 떨어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 P318
친절은 힘든 것이다. 우리는 돕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중간생략) 하지만 말했듯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못랐다. 열차 안의 그 누구도 몰랐다. 그럴 때 친절은 어떻게 전염될수 있는가?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 - P324
내가 아는한 나의 목록은 가치를 인식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의 목록은 내가 세상을,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보다 더 철학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 P332
좋은 목록 작성의 비결은 범주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범주는 다양한 항목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커야 하지만 생각을 잘 감쌀 수 있을 만큼 작아야 한다. ‘역대급 음악‘은 법위가 너무 넓은 반면 ‘1930년대 시카고의 폴란드계 미국인이 작곡한 역대급 폴카 음악‘은 범위가 너무 좁다. 방금 수첩에 적은 목록을 바라본다. "내가 살아본 해외 국가?" 항목이 세 개뿐인 짧은 목록이지만 나의 사고방식과 정체성 형성에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영향을 미친 목록이다. - P332
첫 페이지를 펼친다. 《베갯머리 서책》은 개인의 일기처럼 보이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진짜로 개인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세이 쇼나곤은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내가 생각하고느낀 것을 적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글을 읽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이 쇼나곤의 글을 그토록 재미나게 읽는 이유다. 세이 쇼나곤은보통 혁명의 저자나 죽어가는 저자에게서나 나타나는 투명한 솔직함으로 《베갯머리 서책》을 썼다. - P335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쇼나곤은 사쿠라, 즉벚꽃을 무척 좋아했다. 벚꽃은 순식간에 져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삼 일쯤 만개했다가 다 떨어져버린다. 다른 꽃(예를 들면 매화)은 훨씬 오래 피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연약한 것을 피우려고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 P340
벚꽃은 그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짧은 수명 때문에 사랑스럽다.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 P341
간이 테이블이 견고하고 만족스러운 딸깍 소리를 내며 고정된다. 나이스nice. 창밖으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에메랄드빛 들판의 하이디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나이스. 몇분 후 이상한 생각이 허락도 없이 내 상념에 무단 침입한다. 이모든 게 나이스하긴 한데, 지나치게 나이스해. - P361
승무원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어쩌면 고통이 좋은 삶의필수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고통은, 나름의 뒤틀린 방식으로, 나이스한 것일 수도 있다. - P362
1세기도 더 전에 스위스 열차를 타고 여행하던 또 한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실패한 작곡가이자 시인, 산속에 살기 위해 이른 나이에 거둔 성공에서 도망친 학계의 신동, 웃음과 춤을 찬미하고 "위험한 삶을 살아라!"를 모토로 삼았던 "정신의 비행사" 그 사람 또한 고통을 갈망했다. - P363
<사랑의 블랙홀>은 로맨틱코미디로 분류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지금껏 나온 영화 중 가장 철학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필 코너스가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라는 축복이자 저주와 씨름할 때, 그는 철학의 주요 주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 도덕적 행위인가?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가? 다 큰 성인 남자가 폭발하지 않고 블루베리 팬케이크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가? - P364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열기가 식으며 다음 문장의 형태로 굳어졌다. [깊은 밤 한 악마가 찾아와 네게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반복해서 수없이 되풀이 해야한다. 그 삶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고, 모든 고통과 기쁨과 생각과 한숨, 네 인생의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가 전부 똑같은 순서로 되돌아온다. 이 거미도,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이 순간도, 나 자신도 전부 다.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끝없이 다시 뒤집힐 것이다. 그안에 있는 모래알 중 하나인 너 자신도!"] - P369
"모든 진실은 구불구불하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여백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막 모습을 드러낸 미래의 자신과 갈라주는 텍스트 사이의 빈 공간. 이 여백은 무언가가 누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백은 무언의 과도기이며, 우리 삶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 P372
나는 늘 철학이 명백한 근거와 냉정한 논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그러한 믿음에 흠집을 냈다면, 니체는 그 믿음을 분쇄해버린다. 충동과 비이성을 조용하게 (그리고 종종 조용하지 않게) 찬양하는 목소리가 책 속에 스며 있다. 니체에게 감정은 방해가 되는 것도, 논리로 향하는 길의 우회로도 아니다. 감정은 목적지다. 고결한 사람은 비이성적이며, 누구보다 가장 숭고한 사람은 " 자신의 충동 앞에 굴복하며, 최고의 순간에 그의 이성은 완전히 소멸된다." - P376
어떤 철학자는 충격을 준다. 많은 철학자는 논증을 한다. 일부철학자는 영감을 준다. 오직 니체만이 춤을 춘다. 니체에게 패기와 아모르파티, 즉 운명애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춤추는 법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미친 것처럼 열렬히, 일말의 자의식도 느끼지 않고 춤을 춘다. - P377
영원회귀는 우리의 환상을 벗겨내고 우리의 성취가 거짓임을드러낸다. 큰 거래를 성사시키고, 책을 쓰고, 승진을 했는가?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영원히. 우리는 모두 시시포스다. 신이 내린 형벌로 영원히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다가 그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가여운 그리스신화 속 인물. 뉴저지 몽클레어의 발코니와 친구 제니퍼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나는니체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안다.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의 모습은 시시포스의 행복이다. - P386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정반대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선택할 수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삶 (외부인의 관점에서는 전과 똑같은 삶)은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심란한 일은 하루의 끝에 이를 갈며 와인 한 잔을 더마셔야 할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묘하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세상이 전과 달라 보인다. 니체 또한 이러한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P388
더 나은 것이 있다.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것. 그냥 춤출 것.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내키는 대로 홍겹게 춤을 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춤을 줄 것.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 다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 P389
스토아 철학은 나이든 사람을 위한 철학이다. 몇 번의 전투를 이겨내고, 패배도 몇 번 해보고, 상실도 경험해본 이들을 위한 철학이다. 크고 작은 인생 역경의 시기를 위한 철학이다. - P398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과 혼란을 관리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 P399
바로 고난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것. 로마의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 박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는 기회다. " - P401
스토아학파는 유리잔에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잔이 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긴다. 정말 아름다운 유리잔이 아닌가? 수백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유리잔의 끝을 예상하고 유리잔이 있음에 더욱 감사해한다. 애초에 유리잔을 가져본 적 없는 삶을 상상한다. 친구의 부서진 유리잔과 그때 자신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상상한다. 아름다운 자기 유리잔을 타인과함께 나누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로고스, 즉 합리적 질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P402
스토아학파는 이기적이지 않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다. 감상벽이나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손가락이 손을 돕듯이 그렇게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돕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불편, 심지어 고통까지도 기꺼이 감내한다. 스토아학파의 이타주의는 가끔 냉정해 보이지만 상당히 효과적이다. - P402
키케로는 궁수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궁수는 자기 능력이 허락하는 한 가장 훌륭하게 활시위를 당기지만 시위를 놓고 나면 화살의 궤적이 더 이상 자기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고 숨을 내쉰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 P408
우리 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아철학의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 개념을 설명해 주자 딸아이는 그것이 "멍청한 짓"이며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보다도 더 멍청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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