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니나는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으나 점차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이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했다. 니나가 이 침묵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침묵이 어떤 심연의 끝에 있는지는 파악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갔다.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었다. 나는 그녀의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니나는 길모퉁이를 돌아가기 바로 직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지상에서의 이별의 고통이 엄습해 왔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선사한 인생에 감사한다.
- P369
이것으로 이 수기는 끝이 났다. 끝부분이 나를 몹시 슬프게했기 때문에 나는 울어야만 했다. 니나는 곁에 없었다. 그래서나는 오랫동안 조용히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때문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설령 그 그물에서 벗어났다 해도 그것은 발치에 걸려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끌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 그물은 아무리 얇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 P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