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는 게 미친것인지, 이제 와서 엎는 게 미친 짓인지 아직 정리가 안 되는데 들어 볼래?" 하며 오늘 낮에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서 눈물을 쏟게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 P57

모진 말들은 허공에서 부서져 집 안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깨진 유리잔의 파편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대충 한구석에 밀어 놓은 것처럼 집 안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말의 파편이 때를 가리지 않고 피부를파고들었다. 
- P62

평소 소극적이고 과하게 주변 눈치를 보는 딸이 안타까웠던 언니는 아이가 엄마를 가리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더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 P66

그렇게 말하고 집에 들어서며 엄마는 경진이 왔으니 같이맛있는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요즘은 맥심모카골드 말고다른 브랜드 커피도 드시나 생각했던 경진은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펼쳐진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놀라움의 시작은 질문이었다. "너 혹시 산미 있는 커피 싫어하지는 않지? 경희는 예가체프 산미도 영 별로라더라. 이맛있는 걸." 하더니 엄마는 물부터 끓였다. 
- P79

그렇게 한옥 카페에 첫번째 손님으로 들어가서 엄마는 두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커피의 맛이었다. 달달한 맛을 찾는 엄마는 아인슈페너를 추천받았는데, 작은 잔 위에 크림이 듬뿍 올라간 커피 맛이 평소에 마시던 것과는 차원이다르더라고 했다. 마치 케이크를 액체로 마시는 것처럼 진하고 달콤한 데다 풍부한 맛에 그야말로 줄어드는 게 아까울지경이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한옥 처마에 드리워진 햇살을보면서, 담벼락을 대신하는 대나무 잎사귀를 훑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참 좋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 P82

더도 말고 마흔만 되었어도, 아니 쉰만 되었어도 여기저기 더 다녀 보고 누려 볼 텐데. 이제깨달아 어쩌나 싶어 일순간 서러운 생각이 들더라고 엄마는말했다.
- P83

"아니 그때 카페 안으로 어떤 노부부가 들어오는데 그 어르신들이 완전히 호호 할머니에 호호 할아버지인 거야. 가만보니까 관광지라 그런지 카페 안에 나이 든 사람도 많데. 다들 그러더라고, 눈치 보여 못 할 게 뭐가 있냐고 말이야. 내키면 그냥 무조건 하래. 지금도 못 하는 일은 내년 내후년에는 더 못 한다면서. 게다가 우리도 관광지 가까이 사니까 좀좋으냐고, 민망하면 남들처럼 관광 온 사람인 척하면 된다는거야."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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