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작은(minor) 걸작이란 설명의 서문. 최악의 비극을 향수어림으로해서 마이너란 표현을 썼다는게 슬프게도 따뜻하네.

190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 독일을떠나야 했다. 처음에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그림으로 생계를 꾸리며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았고 1935년 파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열었다. 1936년에는 스페인으로 갔으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여다시 그곳을 떠나야 했다. 같은해 9월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했고1985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레드 울만은 자신을 예술가로 만들어 주고 평생 <낭만적>으로살게 한 것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떠나온 고향에 대한그의 애정은 동급생」의 여러 구절에서 빛을 발한다. 영어로 쓰인「동급생」이 1971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반응은 미미했으나, 이소설을 <작은 걸작이라고 평가한 아서 케스틀러의 서문과 함께1977년 재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나치가 독일을 장악해 가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우정을 그린 이 소설은유럽 여러 나라에서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89년에는제리 샤츠버그 감독, 해럴드 핀터 각본으로 영화화되었다. - P1
그것은 책의 크기가 작다는 것, 그리고 주제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데도 향수 어린 단조minor로 쓰였다는 느낌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 P9
단편은 하나의 일화, 삶의 한 단면을 다루는 데 비해 중편은 뭔가 더 완전한것, 즉 장편의 축소판이 되기를 추구한다. 그 점에서 울만은 훌륭하게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화가들이 구도를 캔버스의 크기에 맞추어 잡을 줄 아는 반면 작가들에게는, 불행히도, 무한정 공급되는 종이가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 P10
프레드 울만의 소설에서 더할 나위 없고 비길 데 없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과 완전무결함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천박함, 어리석음, 잔인함도같이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를 슬픔과공포 속으로 던져 넣고 마지막 행에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품을 이유를 되살려 준다. - P18
영국에서 살았던 유대계독일인 화가가 쓴 몇 페이지의 글이 단테, 셰익스피어밀턴 또는 파스칼의 위대한 구성들과 공통적으로 지난특성은 이것이다. 최악의 것에 언제나 의지할 수는 없고, 저주받은 것들 가운데는 항상 정의가 있으며 그 정의는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이 어둠 속에서 끌어 올린다는 것. - P18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 P21
온갖 영광에 감싸인 그가 어떻게 내 수줍음을 내 의심스러운 자존심과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가, 콘라딘 폰 호엔펠스가 자신감과 세련된 우아함을 그렇게도 원하는 나, 한스 슈바르츠와 공통으로 가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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