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태석 신부 생전에 설립한 (사)수단어린이장학회와함께 준비한 ‘이태석 신부의 공식 전기다. - P7
당시 천주교 주택에 사는50호 가구는 모두 송도성당을 다니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 결과 26호집의 둘째 아들 이태영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사제, 셋째 아들 이태석은 살레시오회 선교 사제가 되었다. 35호집에서는 오창일 오창열 형제가 부산교구 신부가 되었고, 50호집의김해결은 평신도로서 30년간 교회와 부산의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한 공로로 ‘교황 십자훈장‘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의 성금으로 지은 천주교 주택단지가 신앙의 못자리가 된 것이다. - P23
"태석아, 나는 와 내랑 같이 가노? 내가 불쌍해 보이나? 와 내랑같이 가는데?" "아니다. 영수야, 나는 그런 생각 하지 않는다." "다른 애들은 다 나를 피하는데 나는 와 내랑 같이 가는데?" "우리 집이 소년의 집 가는 중간에 있다." - P28
태석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신부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 태석은 깊은 고민 끝에 의사가 되어 그들에게 의술을 베푸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국가 의료보험이 없을 때라 병원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몸이 아파도 치료받는 일이 요원하기만 했다. 그는 대학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동네에 개인 병원을 차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미래의자신을 그려보았다.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곧 나에게 해준 것과 같다." 바로 의사가 되는 것이 성경 구절을 실천하는 방법이자, 신부가 아니어도 가난한 이웃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7
무고한 광주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총칼에 어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제들의 증언은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지키려는 일종의 봉화였다. 성당은 봉화대가, 신부들은 봉수군이 된 것이다. - P38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 P40
이태석에게는 의사가되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였다. 그래서 전방에 근무할 때도 동네를 다니며 아픈 이들을 치료했다. 가끔 틈을 내서 송도성당에 가면 중·고등부 후배들에게 "순간순간의 자기 십자가를 잘 지고 가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하루하루의 삶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봉헌하는 신앙인다운 마음가짐을 강조한 것이다. - P44
불우하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수업은 돈보스코가 수도회를 창설할 당시부터 이어온 ‘예방교육법‘의 하나였다. 예방교육은 청소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질과 역량을 모든 차원에서 일깨워 온전하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이끄는 교육법으로, 전 세계 살레시오 공동체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훗날 이태석이 톤즈의 돈 보스코 학교에서수학과 영어를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학생들과 음악을 통해 소통한 것은 수도회 초기 양성 기간 동안 공부한 예방교육의 실천이었다. - P63
그리고 자기 전에 하루를 돌이켜보면서 성경이나 십계명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는지 생각하는 ‘양심 성찰‘을 했다. 가톨릭에서 ‘양심‘은 사제가 끝까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사제 지원자는 매일 저녁 양심 성찰을 통해 양심을 지키는 훈련을 했다. - P64
살레시오회 사제가 되는 과정 살레시오회에서는 사제가 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 입회하겠다고지원하면 지원자이다. 이들 중에는 평수사 지원자도 있고 사제 지원자도 있다. 지원기를 보낸 후 본격적으로 수도회의 영성과 정신을 배우기 위한 수련기를준비하는 단계인 예비 수련기 이후 수도 생활의 꽃이라 불리는 1년의 수련기가 있다. 수련기를 마치고 첫 서원을 하면 정식으로 ‘수사‘가 된다. 그 후 신학대학 과정을 끝내고 실습기를 거쳐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데, "가난하고 불우한청소년을 위해 현대의 돈 보스코가 되어 일생을 다 바치는 삶을 살겠다"는 마지막 청원으로 종신서원을 하면 초기 양성기가 끝난다. 이후 사제 지망생들은사제가 되기 전 단계인 부제품을 받고, 1년 후에 사제품을 받는다. 이태석은 1991년 입회해서 1994년 1월에 수사가 되었고, 2001년 6월에 사제품을 받아 내전 중인 수단의 톤즈 살레시오 공동체로 떠났다. 10년 동안 살레시오회 사제로 양성을 받은 후 아프리카 선교 사제가 된 것이다. - P65
형, 제가 그때 젊은이성찬제에 청년 봉사자로 참여했거든요. ‘증오와 폭력만으로는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에 깊은감명을 받았어요. - P68
살레시오회 창설자 돈 보스코는 오라토리오를 기도와 교육의 장소인 동시에 청소년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는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친구이자 아버지로서청소년이 정직한 시민과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래서살레시오회에서 오라토리오는 단순히 공간적 의미를 넘어 돈 보스코의 교육 정신과 방식을 종합적으로 일컫는 말로도 사용한다. 훗날 이태석 신부가 톤즈의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내전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재건하고 악단을 만든 이유도 오라토리오를 통해 톤즈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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