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인천
그해, 너의 앞에 서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입속에 내가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 P14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두 얼굴) - P17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 P19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 P26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그해 협재) - P33
사실 대부분의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뇨나 고혈압은 정해진 수치에 이르러야 병으로진단받게 되는데 아직 정상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치가 점점 오르는 중이라면 그는 병의 전 단계에 있는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미병이라 부른다. - P44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적어도 나는 한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P49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 P51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행과 생활)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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