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책이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받은 날, 힘없이 계단을 올라가 다락방 청소를 하던 나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책방 노트에서 이 글을 만났다. "상처받은 내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줘서 고마워." - P6
끊임없이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나, 확장해야 하나, 땅을 더 사야 하나, 이곳을 떠나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을 살았다.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늘 편치 않았다. 삶이란 끊임없이 문젯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어제 읽은 책에선 이렇게 살라 했는데 오늘 읽은 책은 또 다른 길을가라 이야기하고, 어젯밤엔 깃털같이 가벼운 삶을 살리라 결심하고 훌훌 털어 버렸는데 아침이 되면 다시 또 삶의 무게에 휘청거렸던 시간들. - P7
책을 읽고 사람들을 읽고 마음을 읽고 세상을 읽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어도 육체는 서글프다‘는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책이란 읽을수록 생에 서러움을 더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읽지라도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읽고 또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숲속작은책방 서가에 쌓였다. - P7
내 단잠을 방해하는 방문객들이 잠깐 성가시게 느껴지지만, 모쪼록 냥이 세상에선 ‘일하지 않는 냥, 먹지도 말라‘는 오래된 속담이 전해 내려오는바 몸을 일으켜 부르르 떨어 봅니다. 앞으로 뒤로 몸을 길게뻗어 쭉쭉 스트레칭도 한 번 하고요. 그리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오후 1시, 이제 책방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 시골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 영업이사를 맡고 있는 ‘나비‘입니다, 냐옹. - P15
내 순찰 영역인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아봐야 책 읽는 목소리 한 번 듣기 어려운 이 시골에 책을 파는 서점이라니, 말이 되냐고요. 한심한 집사들을 대체 어찌하나 걱정이었습니다. 그렇잖아요? 집사의 벌이는 그대로 아옹이 삶의 질과 비례하는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잖아요.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고양이 손을 빌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세상사람들에게 한번 보여 주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요. - P17
다음 날 아침 마당 정자에 일명 그물침대, 해먹을 걸고 누워 흔들거리며 쉬는 조카를 보았다. 눈이 부셨다. 이모의 탐심에 조카는 결국 해먹을 그대로 둔 채 돌아갔고, 난 단 한 번도 치우지 않았다. 이토록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정원의 소품이라니. - P25
해먹 위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바로 시집이다. 사가 긴 책은 도무지 읽어 낼 수가 없다. 여기서 5분만 책을 읽으면 곧바로 스르르 잠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구름과 기분 좋게 머리칼을 날리는 실바람, 옆에서 속삭이는 새들의 노래까지, 이곳에는 부족함이란 없다. 더욱이 손, 혹은 발 닿는 거리에 책방 고양이 두 마리까지 함께 누워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것도 없다. 이런 만족스러움을 만끽하기 위한 허영심으로 나는 시를 읽는다. 누워서 읽는다. 소리 내어 읽는다. 읽던 시집을 배위에 얌전히 내려놓고 방금 읽은 시를 왼다. 외워 본다. - P26
말린 고사리 한 뭉치, 누군가에겐 하잘 것 없이 가벼운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을 뚫고 나온 봄의 소식이며 빛의 시간을 온전히 견뎌낸 보람이 아니던가. 그렇게 내게로 와서 살이 되고 피가 된 말린 고사리 한 뭉치. 가슴이 뭉클했다. - P29
농촌 지역에는 서점이 별로 없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분석에 따르면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서점이 한 군데도 없는 서점 소멸 지역이 2019년 기준으로 5곳(인천 옹진군, 전남 신안군, 경북영양군, 울릉군, 경남 의령군), 서점이 단 한 곳뿐인 서점 소멸 예정 지역‘도 총 44곳이나 된다 (지역서점 현황조사 및 진흥정책연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12). 내가 살고 있는 괴산군도 그중에 속해 있다. - P33
그러니 농촌 지역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책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런 도농 간, 세대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군 단위, 면 단위 농촌 지역에 서점 설립을 권장하고 그나마 우리처럼 문을 열고 있는 서점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정책 지원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도 등 대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점 지원책이나 조례 제정 등의 활동이 이곳 괴산 오지에까지 이르는 데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다. - P34
책방지기 인생에 아주 소중한 감동을 전해 주었던 책, <나는 걷는다〉였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후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다. 아내와도 사별했고 이제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삶의 우울을걷어 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건 실크로드 횡단의 여정이었다. 예순두 살 나이에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를 두 발로만 걸어서 완주했던 4년간의 기록이 책 세 권으로 묶였다. 처음 책을 발견했을 때는 선뜻 읽기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한 권이 무려 5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 게다가 여행기라고 하면 아름다운 정경들을 사진이나 이미지로 담기 마련이라 대개글 반 사진 반인데, 이 책은 사진이나 그림이 한 장도 없고 글만 빽빽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뒤 어떤 여행기도 나를 감동하게 만들지 못했다. - P37
사람들이 바다에 병을 던지듯, 나는 실크로드에 나를 던졌다. 존재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나 먼 곳에서 무엇을찾을 거냐고 물었다. ‘살아남을 이유‘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 나는 가야만 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가야 하니까..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나는 걷는다), 효형출판
인생 2막을 기약하는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이 책을 골라준다. 과거를 묻고 새 삶을 시작하고픈 이들, 쉼 없이 달리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다 문득 멈춰 서게 된 퇴직자들, 그들에게 나는 새로운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하라고 권한다. 책은 때로 직접 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 주는 고마운 조력자다. - P38
대신 세 권의 책을 통해 나만ㅇ디 실크드를 걷는다. 어쩌면 야비한 방법이지만 독서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은퇴한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당장 배낭을 꾸린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독서란 또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 P39
그 뒷모습이 어찌나 애잔하고 쓸쓸한지.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삶이란 쓸쓸하기 짝이 없고 주변에 가족과 이웃들이 있다 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이는 적다. - P43
"괴산에 와서 살아가며 가장 소중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숲속작은책방이요‘라고 대답해 왔는데 소중한 이유가 또 하나 더해졌다. 책방에 와서 내 인생 책을 찾았다고 하는아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지금 자신이 살고있는 것 같다는 아이,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건드려 준 책방에서의 하룻밤이 너무나 소중하다." 얼마 전 학교 북클럽 어린이들과 책방에서 북스테이를 하고간 초등학교 선생님이 남겨 주신 글이다. - P45
책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반려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함께 사는 내내 기쁨이었던 반려견이 수명을 다해 점차 생명이 꺼져 가는 과정이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늙어가는 내 엄마에 관한 이야기처럼도 읽힌다. 어느새 책을 읽어 가는 친구의 목이 메고, 곁에서 낭독을 듣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폭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떠나보낸 반려견, 그리고아직 곁에 남아 점점 늙어 가고 있는 또 다른 식구 생각에 왈칵 울음이 터져 버린 것이다. 눈물은 전염이라 책을 읽고, 또 들으며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울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앉아 펑펑 울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같이 운다는 것, 그래도 흉이 되지 않는 공간, 말로 미처 하지 못했던 내 안의 감정들이 무언가에 공명해 밖으로 터져 나오고, 그 감정은 다시 옆 사람에게 전이되고, 그래서 다 함께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책방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 P50
우리 세대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내게 첫사랑 같은 설렘을 안겨 주었던 세계 명작들이 있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소공녀>, 〈작은 아씨들> 같은 추억의 명작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러나 시련의 끝에는 해피엔딩이 있었다. 그들처럼 가난이 보편이던 시절, 어려웠던 우리들은 앤과 주디와 세라, 조와 자매들을 통해 힘든 일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 P56
"시련을 즐기지 말라. 시련은 흔히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시련은 사람을 깎아내리고 거칠게 하고 고통을 남길뿐. 애써 시련을 거둘 필요는 없다. 나는 네가 시련 없는 행복한삶을 살기를 원한다." 불안정한 젊음과 해답 없는 미완의 청춘으로 방황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던 내게 이 말은 추운 겨울 아침, 눈앞에서 쟁하고 부서지는 햇빛마냥 명징한 언어로 다가왔다. - P57
그럴 때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많이 울면서 읽었던 책. 꼬마 제제의 아픔이 그토록 처절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제제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내 머릿속에 항상 질문으로 남아 있던 그 삶을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다시 만났다. 시리즈의 2부인 〈햇빛사냥), 3부인 (광란자)가출간된 것을 알았다. 짧은 유년기 이후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제제의 청년기가 가슴 아팠다. 그리고 도서관 관장이 되어 다시읽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나를 제제보다 뽀르뚜가 아저씨에 감정 이입하게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 P63
할머니란,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존재가 아니라 실은 괴팍하고 까탈스럽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걸 나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 책 속의 삶과 책 밖의 현실이 괴리된다. 아아, 나의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 P63
"온갖 새가 계속해서 우는 소리가 들리고 아름다운 고양이두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고인기척처럼 바람이 불면 꽃들이 하늘하늘거리고, 그 마을에가서 느꼈던 충격이랄까, 감동 같은 것은 저의 미래와 연결되어있을 것 같은 그림 한 장일 텐데요. 그곳에서 누군가를기다리는 삶이에요. 이렇게 조용한 곳에 조용히 있으려고 들어왔지만 어느 한편으론 사람들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때 외로움을 다독이고…….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책장을 정리하면서 사는 내 미래의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 것이죠." - P67
한 사람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으로, 나의 삶이 어느 낯선 타인의 삶으로, 이렇게 마음은 돌고 돌아 긴 인연의 끈으로 지구를 휘감고 그래서 세상은 아직 조금 더 살아볼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P67
나 역시 큰 도시에서만 살다가 시골로 이사 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일을 겪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엔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관계가 틀어진 자리에 한숨과 한탄이 남았다. 되돌아갈 수 없기에 마음을 다잡고 남과 관계없는 나의 삶을 살기로 했다. 묵묵히 집과 정원을 돌보고 마음밭을 가꾸다 보니 척박한 돌밭이 윤택해졌고 상처가 퇴비가 된 자리엔 예쁜 꽃이 피었다. 비로소 삶을 이해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조급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니 시골살이가 살 만해졌다. - P79
마음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꾸지만, 현실은 오늘도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는 대신 노동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차가운 겨울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그릴 시간이 없고, 당장 먹고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만 하다보면 꿈꾸던 작가가 될 날이 참으로 요원하다. - P90
현행 도서정가제의 최대 문제점은 불공정 경쟁이라는 점이다. 책은 그 성격상 어디에서 팔든 똑같은 상품일 수밖에 없다. 이런 똑같은 상품을 동네책방에서는 정가로 파는데 온라인 서점에서는 일단 10퍼센트 할인은 기본이며, 온갖 특혜와 화려한 사은품까지 선물로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소비자가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겠나. - P103
학교 선생님들이 방문할 때마다 이런 설명을 구구하게다. 지역에 서점 하나가 살아 있는 것이 지역 문화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작은 책방에서 할인하지 말고 책을 구매해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책방을 사랑하고. 우리를 응원하는 몇몇 학교와 교사들은 이런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말 일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도교육청 장학사를 비롯해 괴산뿐 아니라 충북 지역 많은 학교와 교사들이 책방에 견학 혹은 연수라는 이름으로 단체 방문했다. 이 공간이 정말 좋다며 가족과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돌아가서 우리 책방에 공식적으로 책을 주문하는 곳은 많지 않다. 개인의 응원이 시스템을 움직여 실제 협업과 지원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 P104
20년 세월을 가뿐히 뛰어넘어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순정만화의 전설이 되었고, 이 만화를 읽었던 소녀들이 엄마가 되어 다시 딸과 함께 읽겠다고 펀딩에 힘을 보탠 것이다. 또한 잊지 못할 불후의 명언을낳은 작품이 아니던가.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복잡다단한 우리들의 운명과 삶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그 작품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다. - P110
만화로 우리 사회 내면을 들여다본 북직한 작품 중에 발군은 윤태호의 <미생>이다. 2012년부터 다음 웹툰 플랫폼에 연재를 했던 이 작품은 새 회차가 나올 때마다 눈이 발개지도록 울며 봤던 작품이다. 작가가 그린 만화는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눌러가며 읽었으나 독자들이 올린 댓글을 보다가 끝내 눈물이 터져 버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바로 이게 웹툰이 가진 힘이라는 걸 느꼈다. 만화가 올라오면 순식간에 수백, 수천의 댓글이 주르르 달리는데, 댓글을 읽으면서 공감의 폭과 깊이가달라진다. 본문 내용은 물론이지만 댓글 사연을 읽으며 눈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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