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맞을 때면 오래된 시구를 인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들은 것은 거의 기억하고, 온종일 귀를 기울이지만, 가끔은 그 모든것을 조리있게 하나로 맞춰낼 방법을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진실한 울림이 있는 듯한 단어나 구절에 매달린다. - P5
선생님이 하시는 맹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가끔은, 할 수 있는이 그것밖에 없을 때도 있지요. - P8
렘베티카에 맞춰 춤을 출 때면 음악이 만들어내는 원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음악의 리듬은 울타리가 있는 동그란 우리가 된다. 거기서 당신은 한때 그 노래를 살았던 남자 혹은 여자를 앞에 두고 춤을 춘다. 춤을 통해 당신은 음악이 뿜어내는 그들의 슬픔에 경의를표한다. - P11
동쪽, 그가 걸어가고 있는 쪽에서 하늘은 피 흐르는 상처에 바른 드레싱 색을 띠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방대함 안에서 그의 모습만이 홀연히 등장하고, 이는 그 자신보다는 내게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 P27
그러나 마을이 더 강력한 더스트에도 버틸 수 있는지, 이 마법 같은 식물들이 어떤 원리로 더스트를 견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프림 빌리지는 거대한 기적이었지만, 기적이라는 말은 근원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곳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진 도피처였다. - P204
뭐가 옳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프림 빌리지 바깥의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인류 전체의 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내팽개쳤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을수 없었다. 그런데 왜 버려진 우리가 세계를 재건해야 할까. - P215
"제조에 필요한 재료와 무게,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과학의 원칙이지. 하지만 이건 달라. 감추는 것이 널 구할 테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야, 원칙이 네 약점이 되고, 편법이 네 무기가되지, 이 비참한 시대가 끝날 때까지는, 네 머릿속에 제조법이완벽하게 들어가 있어야 해, 남이 볼 수 있는 기록은 절대 남기지 마.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숨기는 게 좋아." - P221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 P227
돌이켜보면, 이별이 찾아오기 전에 아주 짧은 순간, 평화가 지속된 날들이 있었다. 일주일쯤이었을까. 아니면 열흘쯤 그 이후로 프림 빌리지에 들이닥친 수많은 일들에 비하면 너무나 일시적인 평화였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 P233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그 식물들을 보며 고통은 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과 들함께 오는 것이거나. 이 마을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식물이 나에게 알려준 진실은 그랬다. 어느 쪽이든, 나는 더이상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P234
프림 빌리지를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영원함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아마라는 당장 오늘 버틸 곳, 내일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매일을 쌓아가면 이곳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리의 도피처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37
"지금부터는 실험을 해야 해. 내가 가르쳐준 것, 그리고 우리가 마을에서 해온 것들을 기억해. 이번에는 우리가 가는 곳 전부가 이 숲이고 온실인 거야.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바꾸는 거야. 최대한 멀리 가. 가서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어. 알겠지?" - P242
나는 천천히 시트에 몸을 붙였다.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내가 마음을 모두 주었던 이 프림 빌리지는 영원히 지속될 수없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결코 오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여기에 내 마음이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동안 붙잡혀 있으리라는 것을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 P244
실패할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도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 P257
"그들은 자가 중식 나노봇의 입자 크기를 줄이는 실험을 하고있었어요. 그러면 분자 단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또 재조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분명히 경고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듣지 않았고." - P292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밀었다. 그들은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한 달 뒤의 창고 보수 일정을, 다음해 작물 재배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레이첼의 온실이 마을에 희망의 감각을, 죽음과의 거리감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의 실체가 불안정한 거래에 불과할지라도 그랬다. - P299
지수는 자신이 조금씩사람들이 가진 어떤 활력에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매일의 활기에. - P302
- 네가 말레이시아까지 온 이유는 뭐였어? -쓸데없는 걸 물으려고 이 강아지를 개조한 건 아닌 줄 알았는데. -이런 거 물으려고 개조한 것 맞아.. - P315
"내가 너에게 개량종을 넘겨주면, 프림 빌리지는 해체되겠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이 온실은 유지되지 않겠지. 그러면 우리는 여기 더이상 남지 못하게 되고, 언젠가 너도 나를 떠나겠지. 이곳 밖에서 너는 유일한 정비사가 아니니까. 그래서…… 네게 개량종을 주지 않은 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어." - P339
"그제야 언니가 사실은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요. 저는 언니가 떠나버릴까봐 언제나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요. 아마라는 단지 아마라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을 뿐이라는 걸 이제야 이해했죠. 아마라에게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고통이 더 컸는지도 몰라요. 그리움과 고통은 언제나 함께 오고, 모두가 그것을 견뎌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아마라와 그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 P346
"우리만이 아니었군요. 모두가 잊지 않았어요" "맞아요. 당신들이 약속을 지켰고, 세계를 구한 거예요." - P363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모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대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시위였지요.. - P365
문득 아영은 레이첼의 눈빛이 어릴 적 정원에서 보았던 지수의 눈빛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후회와 그리움이 섞인, 하지만 고통이라고만은 단언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감정이 그 시선 속에 있었다.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 P378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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