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가 강화 동네 책방 시점에서 고른 책이다. 이 책으로 9월 달 독서토론 모임에서 나누고 싶다고 해서, 거기 있던 영주, 애리, 나까지 모두 사게 되었다. 사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다른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망설이던 중에 미영이가 결정을 내려주게 되었다. 표지가 예뻤다. 최은영 작가의 책은 <파인 다이닝>에서 한편의 단편 소설, 작가님 단독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서 이미 마음이 많이 갔었다.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미영이 말에 의하면 <내게 무해한 사람>도 그런 책이라고 한다. 제목도 좋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니....

바빴던 날들이었고, 다른 친구들도 그래서 독서토론은 10월로 연기 되었고, 나 역시 그제가 되어서야 이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완독한 느낌은..... 숨막히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느낌이다. 현실의 꼬였던 것들이 세월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무언가 해결책이 있는 것 같다. 어떤 강한 충격의 사건들이 있기 보다는 소소한 내용들이 나(지연) 와 할머니(박영옥 할머니)가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증조모 (삼천, 이정선 할머니), 새비 아즈마이 (증조모의 절친)를 올라갔다가, 현실의 엄마 (길미선 ) 와 나의 갈등으로 내려온다. 잠깐 나왔던 고모조와, 증조부, 새비 아즈바이 (새비 아즈마이의 남편), 명희 할머니 (새비 아즈마이의 고모), 희자 할머니 (새비 아즈마이의 딸, 증조모 보다 세살 어린 동생이자 친구), 명숙 아주머니 (엄마의 친구), 길남선 할아버지 (명옥 할머니의 망할 남편이자 엄마 길미선의 친모), 아버지 (나 지연의 아버지, 길미선의 남편), 정연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지연의 친언지), 지우 (나 지연의 친구) , 팀장 (정말 잠깐 나온 지연의 희령 직장의 팀장) 등이 나오나 이야기가 복잡하거나 등장인물이 헷갈리지는 않다.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 지금 살아있는 사람 인 것 마냥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마음이 가고, 마음이 아프고, 나쁘다고 하고 싶으면서도, 상황에 그럴 수 없는 마음.

외가로 이어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도 우리는 친가를 따름이 더 익숙할 수 있는데, 외가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보니... 사람이 이어지고 마음이 이어지는 구나 싶다. 나는 얼마나 외할머니를 알았던 것일까. 사실 지금의 시대에서야 외조모 친조모를 비록하여 친척들도 잘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 할머니, 증조모의 이야기가 이렇게 마음으로 다가 올 수 있다니...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꼬임이 그렇게 위에서 부터 위로 받을 수 있다니. 이 책의 남자들은 새비 아저씨를 제외하면 이해가 안되는 꼰대의 마음인 줄 알면서도 참 너무한다 싶다. 그래서 여자들의 연대가 돗보였는지 모르겠다. 눈물나는 절친인 증조모 정선 할머니 (새비 아즈마이에겐 삼천이라 불리는) 와 새미 아즈마이의 우정과, 고양이 같은 명희 할머니 (새비 아즈마이의 고모)의 할머니인 명옥 할머니에 대한 츤데레 애정 (명희 할머니가 명옥 할머니에겐 할머니 뻘이니, 주인공 지연에게는 고조모와 같은 시대의 인물), 희자 할머니와 명옥 할머니의 어린 시절의 우애와 커서는 어딘 가 거리감 느껴지던 우정, 그리고 끝끝내 그것만은 아니었던 지연이를 통한 할머니가 되어서 쓰게 된 답장, 정말 생각도 못하고 새삼스러웠던 엄마와 명숙 아주미너라는 분의 우정, 그리고 잠깐 나왔지만 지연과 지우의 우정, 팀장의 그만의 위로 방식등... 그 우정에 나는 마음이 갔고, 그 인간적인 무엇에 마음이 갔다.

이 책에서 인간에 대한 소소한 경멸과 회환 등이 반복해서 나온다. 일제 시대 때, 625전쟁에, 그 이후 퍽퍽한 삶에, 현재로 이어지는 삶까지. 강아지 봄이와 귀리 얘기에도 인간의 삶은 대비되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책은 소소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이야기이고, 인간성을 가족과 모계와 친구에서 느껴지는 이야기라고 본다. 결말은 드라마틱 하지 않지만 지연은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엄마가 남겨두었던 사진이 할머니 댁에 액자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말없지만 무언가를 나눈 것처럼 할머니와 지연은 미소를 짓는다. 그 안에 어떤 일들이 잇을지 대충 짐작이 가는 마지막이다. 완전히 어떤 엉망인 매듭이 풀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그렇게 회복되어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우리 삶에도 그런것들이 있다면 천천히라도 회복되어지고 우정과 연대가 힘이 되어 질수 있기를 바래본다.

미영이가 왜 제목이 밝은 밤일까라고 했다. 밤의 어두운 인간성에 대한 이미지에 그래도 희망 한 조각 밝은이란 꾸밍을 붙인게 아닐까,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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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남은 구절, 내 맘대로 pick. 그리고 덧붙이는 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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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대에 첫 출근을 한 날,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 한번 했었다고 답하고는, 더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읽고 작년에 이혼했다고 덧붙였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뛰었고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른 주제로 말을돌렸다.
- P 12 」
아, 뭔지 알것 같다. 더 설명해달라는 눈빛. 나도 한참 오지라퍼인적이 있었는데,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다행히 하고 있다.

「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P 13 」
이 책은 작고 소소한 사건 (물론 이런 걸 작고 소소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에 인간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제노사이드의 큰 스케일과는 다르지만, 인간이라 잔인하고 상처입히는 것에서부터, 인간이라 서로를 달래주고 구원해주는.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이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 14 」
아,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면 저렇게 하면 좋을 듯. 나는 다행히도 몸은 아프지만 마음이 저정도 였던 시절이 지나 다행이다. 저런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는 개개인마다 느끼는 고통은 다르겠지만, 나역시도 그랬던 적이 오랜 시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몸만 아프지만, 저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조금은 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 ˝밥은 같이 먹어야 맛이야.˝
할머니의 말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은 어떤 사람과 먹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 다르니까. 혼자 넷플릭스를보며 밥을 먹는 게 훨씬 더 편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법은 맛이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 P 28 」
항상 말하지만, 무엇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추석 전 주일 아빠의 생신을 미리 한날. 무엇을 먹는지도 누구와 먹는지도 너무 좋았다. 가족을 사랑한다.

「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다시 말을 하려다가 입을 열지않았다. 얼굴에 내내 어렸던 미소가 사라졌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냥……˝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봤다. ˝보고 싶지.˝
할머니는 내가 마치 할머니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다 입가에 힘을 줘서 웃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지 뭐.˝
- P 31 」
나는 엄마가 지금 계시지만, 나중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면...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엔 당연히 내가 엄마 보다 오래 살 줄 알았는데, 사실 지금은 그것조차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담담히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족 중에 누가 없어진다는 건... 힘든 일이겠지.

「 - 같이 가자.
고조모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 나도 데리고 가라.
병자에게 무슨 힘이 있었는지, 증조모는 치맛자락에서 고조모의손을 떼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겨우 손을 떼어내자 고조모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기래, 가라. 내레 다음 생에선 네 딸로 태어날 테니. 네 딸로 다시 태어나서 에미일 때 못다 해준 걸 마저 해줄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 P 34 」
영옥 할머니는 그런 고조마가 증조모인 정선(삼척) 할머니가 다시 태어난 걸까. 난 환생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도 증조모 정선(삼천) 할머니는 그런 마음으로 영옥 할머니를 키우지 않으셨을까. 나도 누군가를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대한 적이 있었나.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맘 아프게 헤어진 건 또또, 또순이, 아롱이, 나르....

「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정말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오고 마른 까치가 하늘을 날았다. 철길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에게 내려오라고 손짓하는 그녀를 보며 그는 그 순간이 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직감이었다.
- P 37 」
아마 이 때는 증조부의 진심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 순간이 순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다행이다. 비록 그 이후는 때려주고 싶은 그냥 꼰대 아저씨였지만서도.

「 가고 말고는 너가 정하라우, 군인들이 널 데려가면 내 견딜 수없을 것 같아서 이러는 기야. 네 말이 맞다. 내 너를 몰라. 너도 내를 모른다. 기래두 알 수 있는 기가 있잖아. 너가 이렇게 가버리면 내는불행해질 기야 되돌릴 수도 없이 고통스러워질 기야. 내를 믿지 않는것이 옳다. 내는 너가 지금처럼 사람들을 의심하며 살았시면 좋갔어.
- P 43 」
그 증조부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이 말을 스크랩한 건 정말 이 말이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나를 믿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며 살라는 저 말이 어찌 진심이 아니며, 어찌 설득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 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봐 두려워하며잠들지 못하는 나이, 아침마다 옥수수를 삶아 한 광주리를 이고 팔러다녀야 하는 나이,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의 공포와 노여움과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나이, 영영 자기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나이, 백정이라는 표식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할머니는 증조모가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P 47 」
열 일곱이란 나이는 나나, 내 또래에겐, 그리고 지금도 아주 어린 나이인데... 옛날엔 그랬구나. 그리고 증조모 정선(삼척)할머니는 계속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붙들어 살았다고 했다. 그런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나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때때로 기억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힘들었던 시기들이 때때로 지금도 나에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저런 서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 그 때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붙들려 사는 삶. 그런 트라우마 정도는 이겨내야 하는데 그냥은 쉽지 않겠지. 나는 지금, 여기를 살아야지.

「 시계를 보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주무셔야 하는데 눈치도 없이 앉아 있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니 할머니는 할머니 집에서는 결코, 어떤 경우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법이라고 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하는 합머니는 이상하게도 섭섭해 보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내가 죄송하다는 말로 예의를 차린 것이 할머니에게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여겨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 50 」
할머니 너무 좋다. 나도 이런 말을 하거나 듣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법이라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잘못이라고 (물론 나는 많은 잘못을 했지만..).

「 그녀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뽑아내도 잡초처럼 퍼져나가서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망을 지배할 수 없었다. 희망이 끌고 가면 그곳이 가시덤불이라도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그건 안전한 삶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는남자를 따라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의 경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괴로운것이었을까.
- P 56 」
때로는 체념하고 포기하는 게 훨씬 살아가기 쉽다.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거라고 이십대 중반 내 팀장님은 그러셨고, 오랜 시간동안 나 역시 그랬다. 살다 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도 체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삶이 더 좋아 보인다. 체념하고 포기하면 무엇을 희망하고 살았는지도 잊을 듯. 우리 모두 그렇게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 갈 듯. 그러나 포기하지 못하고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너무나 괴롭겠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야 할까.

「 ‘사람들은 원래 기래.‘ 고조모가 증조모의 마음속에서 말했다. ‘사람한테 기대하지 말라우.‘
‘어마이, 나는 사람들한테 기대하는 기 아니라요.‘ 증조모는 생각했다. 나는 새비한테 기대하는 기야.‘
언젠가부터 증조모는 마음속으로 고조모와 이야기를 했다. 혼자집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고조모에게 말했다. 너무 외로워서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던 때였다.
- P 65 」
사람에게 기대는 게 아니라 절친인 새비 아즈마이에게 기댄다는 증조모의 이야기. 그것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한 이야기. 사람은 때로는 거대한 것 보다는 작고 소소한 것에서 (새비 아즈마이가 소소하다는 말은 아니다) 구원을 발견한다 !

「 ˝오래된 편지들, 내가 받은 것도 있고 우리 엄마가 받은 것도 있고 작은 집에 살면서도 엄마가 얼마나 편지들을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신줏단지 모시듯이 정성껏 보관했는데, 엄마 가셨다고 그걸 폐기버리듯이 버릴 수가 없었어. 엄마가 받은 편지들을 읽으면 꼭 엄마가살아 계신 것 같구 그랬어. 그걸 어떻게 버려. 읽지 못하더라도 그갖고 있는 거지.˝
- P 72 」
그래서 오래된 편지들을 버리지 못한다. 한 번 예전 편지들을 봐야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주었지만, 나에게 그런 편지들을 보내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얼마전 오래 전 이메일을 보며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마음이 느껴지던 것들이 많아 미안함에 먹먹해졌다. 아마 손편지로 쓴 편지들을 보면 더 그렇겠지...

「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 P 82 」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그렇지 않을까. 내 죽음이 누군가에게 상심과 슬픔을 준다면 기억하지 않는게 좋겠지만.... 이미 떠난 또또, 또순이, 아롱이, 나르는 나에게 최고의 멍멍과 냥이의 모습을 보며 주었다. 물론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고 공감못할 사람 많겠지만, 내게는 그 언 존재보다 소중했던 존재다. 함께 있었던 시간이 행복했고, 지금도 때떄로 기억하면 슬프지만 역시 행복했던 기억도 같이 난다. 꼭 끝이 모든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그 간의 과정이 있으니, 우리는 서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 그 껍데기들을 다 치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깊이 잠든 남편 옆에서 소리 죽여 울던 내 모습이, 논문이 잘 써지지 않으면 내 존재가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나를 다그치던 내 모습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숨쉬듯 나를 비난하고 비웃던 내 모습이.
- P 85-86 」
좀 다르지만 비슷한듯. 나도 내 주위 많은 사람들도, 알지못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내 존재가 부정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압박을 다하겠지.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 나는 아줌마에게 엄마의 계좌번호를 적어주면서도, 엄마가 친구를위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처럼 차갑고 곁을내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않았기 때문이었다.
- P 87 」
내가 아는 누군가의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지연이 엄마에게 저런 모습을 보고 의외이겠지만... 아마 지연의 어떤 모습도 엄마에겐 그랬을거고, 내 모습도, 우리엄마의 모습도, 친구들도... 그래서 무조건 단언하는 건 무지한 말일 수도.

「 할머니가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바깥에서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집에와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 마음은무엇이었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곤 하던 내 존재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던것 같다.
- P 95 」
나도 그랬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런 것 같다. 걱정을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자존심이라기 보다는 그래서는 너무 엄마 아빠가 속상할 것 같고, 내가 약하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 어린 시절에도 지금도.

「 넌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야. 어느 날 말을 이을 수 없어 눈물만흘리던 내게 지우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널 더 많이 사람할게. 이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도 느끼며 살아.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있다는 것을 나는 지우를 보며 알았다.
102 」
이 책에선 친구,우정, 연대가 계속 나온다. 저런 친구 지우. 저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좋은 친구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마음보다 더 큰 사랑을 주었다. 아프고 나서 좋았던 건 서로 연락하기가 민망하던 친구들도 연락하게 되고, 그렇게 보고 싶은 마음들을 표현하는 게 좋았다. 계속 있어준 친구들에게도 감사하고.

「 ˝아무한테나 그런 건 아니야.˝
네가 내 친구여서 고마워. 나는 그 말 한마디를 소리 내어 하지 못했다. 지우는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첫차를고 서울로 돌아갔다.
- P 106 」
그러니까. 아무한테나 그런 게 아니라는 말. 정말 고마운 말. 꼭 그런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들.

「 ˝헤어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증조할머니랑 새비 아주머니가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다면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았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가만히 차를 마셨다. 내가 진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끝이 슬프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구나.˝
할머니가 나를 보고 다정하게 미소 짓다가 입을 열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엄마의 상처였어. 그렇지만 자랑이기도 했지. 엄마를 크게 넘어뜨렸지만, 매번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새비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거였어, 새비가 나를 얼마나 귀애해줬는지 몰라, 새비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사람처럼 말이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처 같은 거 받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는 삶을 택하셨겠네요.
˝그래. 그게 우리 엄마야.˝
- P 116 」
그러니까. 냥이들도 사람들도. 끝이 슬프면 슬픈게 아니라는 걸 아롱이와 나르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간 날 그냥 저절로 알게되었다. 슬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던 마음. 몰랐다면 상처도 받지 않아도 되겠지만, 알아서 자랑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줬던 마음. 그래서 내가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난 게 감사하고, 지금의 사람들을 만난 건 감사하게 생각한다. 열살 난 한냥이 두냥이가 언제 무지개를 건널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귀하고 귀하다, 룩이와 마당이를 만나 아직은 그만큼의 정을 쌓진 못했지만 그렇게 같이 시간을 쌓는 게 좋다.

「 어쩌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갔어. 끝이 같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게 아직도 두렵지만서두, 희자 아바이가 어차피 가야 한다면……… 차라리 그 모습을 내가 보지 않고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어쩌면… 희자 아바이를 생각하면 그게 나았을지도 몰라. 차라리순간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희자 아바이가 이렇게 아플 일이 없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이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 욕심이라고 욕해좋다. 희자 아바이 말고 내 위주로 생각한다고 욕해도 좋다. 그래두 희자 아바이가 살아 돌아오고, 그렇게 살아서 나랑 희자랑 같이 지냈던시간이 좋았더랬어. 희자 아바이가 히로시마에서 죽었다면 내가 무얼 빌었을까 생각보면 말이야…… 고저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십 분이라도 희자아바이를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안아보는 거, 내 기걸 원했을 것 같아.
돌아와 고작 몇 년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다고, 마음만 더 아른거아니냐고 말하는 동무들도 있었지. 그런데 삼천아 봐봐라. 한 시간, 한순간에 비한다면 이 몇 년은 참으루 긴 시간 아니갔어. 나, 희자 아바이가 참 귀해. 기래, 얼마 있으면 희자 아바이가 가겠지. 내 기걸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데 난 이쪽이 더 좋다. 희자 아바이가 어떤 모습이어두 내 곁에 있잖아.
- P 120 」
그러니까. 누군가 소중한 존재가 무지개를 건넌다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겠지만, 그래도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있던 그 시간들이 상처와 슬픔보다는 더 많은 것을 주기에 귀하다. 끝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뒤늦게 이 말 한 것이 본인이 모르고 한 말이라고 한 새비 아즈마이이긴 하지만, 이 말은 정말 나에게 공감을 줬다.

「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희자 아바이가 말했어. 조선 사람이고 일본 사람이고 중국 사람이고 간에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사람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고, 사람이 저지른 일이야. 사람이 저지른 일이야. 희자 아바이는 내 손을 붙잡고서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어.
- P 123 」
이 책을 읽으며 서사도 결도 매우 다르지만 제노사이드를 생각했다. 사람이란, 인간성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잔인한 존재도 사람이고, 그걸 해결할 존재도 사람이라고 그렇게 다시 생각해 본다.

「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제서 인간이었던 걸까.
- P 130 」
제노사이드에서도 비슷한 독백이 나온다. 왜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새로 태어났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거라던 소년병.

「 ˝ (이전 생략)그런데 이번에 명희 언니 만나면서 잡고 싶어졌어.˝
˝뭘?˝
˝인생을.˝
친구들과 1박 2일로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외국이라고는 부부 동반으로 일본에 가본 것이 전부인 사람이 인생을 잡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명희 언니가 그러는 거야. 우리 같이 우체국에서 일했을 때 내가그렇게 얘기했대. 세상을 구경해보고 싶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싶다고. 그러다 결혼했고, 그다음은 너도 잘 알잖아.˝
- P 133 」
엄마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길미선이란 사람은 본인의 환경을 일치감치 받아들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영옥 할머니의 포기와 체념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평생을 살았고, 그럼에도 맘 속에선 억울함이 있어 할머니와의 관계가 틀어진게 아니었을까 한다. 소설 밖에서 저 문단을 보면, 어느 광고처럼 엄마도 처음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 내 나이에 고등학생 딸이 있어 당연히 완전한 어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나를 보면 어릴때나 지금이나 그냥 똑같다. 엄마도 친구가 필요했고 위로받고 조언받고 여행가고 놀았어야했다.

「 엄마가 벤치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의 마음을 짐작하려고했다. 엄마는 별다른 감정 없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지만 화가난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지쳐 보이했다. 엄마는 나를 등지고서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도 엄마곁에서 나란히 걸었다.
- P 134 」
그러게 이상한 일이다. 꼭 내게 안좋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게 아니라는 말을 지난번 법륜스님 책에서도 읽었다. 이 말을 이렇게 또 만났다.

「 나는 희자가 높은 하늘에 연을 띄우듯이, 기억이라는 바람으로 잃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음에 띄워 올리곤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바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으리나 짐작하면서.
- P 152 」
마음을 높은 하눌에 띄울 수 있다면 좋은 것일까, 아닌 것일까. 희자 할머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희자할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보진 못했던 것 같다.

「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당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P 156 」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내 자신을 생각해 본적은 없다. 난 꽤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가 보다. 그러나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 독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팀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냥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닌 가 싶다. 살아갈 만한 인간이고, 살아가게끔 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진 인간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 팀장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린 팀장의 얼굴을 상상해봤다. 예의바르고 말을 가려 하고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잘 얘기하지 않는 그녀가 내게 틈을 보인 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위안이 되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어쩌면 그것이 그녀 방식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 159 」
그녀 방식의 위로, 맘에 든다. 꼭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오지랖 부리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너 요즘 괜찮냐.˝
˝네.˝
할머니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거짓말을 했다.
˝괜찮아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괜찮아요.˝
내 목소리가 내 귀에도 조금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할머니는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 160 」
괜찮다라고 묻는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면 괜찮다고 대답해야 하니까. 그러면 괜찮아 보이지 않아서 라고 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먼저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나는 목에 두른 목도리가 다 젖도록 소리 없이 울었다. 그후로 누구도 다시는 봄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봄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냥 개일 뿐이야.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그런 거짓말로스스로를 위로할 수는 없었다.
- P 162 」
때때로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할 떄가 많다. 갑자기 좀비 떼가 덤벼들어 피난을 가야 한다면? 그러면 우리 한두냥이를 안고 업고 가야지. 마당이 룩이는? 마당이가과연 잡힐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순간에도 함께 가야지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실제 저런 상황이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저런 순간에 버린다는 건 죽는 것보다 더 험한 상태로 보낼 수도 있을 텐데.

「 그믐밤이었다. 별 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 천한 존재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 P 167 」
인간에게 많이 실망하고 잔혹함을 알았으니 별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수 있겠지. 그런 경우는 많다.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니까.

「 나는 학교에 들어갔고 한글과 숫자를 배웠고 시계를 읽는 법을 배웠고 죽은 사람은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거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여기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다. 나는 엄마에게 죽은 언니와 놀았다고 말하던 날을 떠올렸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은 사람 앞에서 나의 진실을 떠벌리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엄마의 고통 앞에서 나의 진실은 가치가 없었다. 어떤경우에도 엄마의 불행에 나의 불행을 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거짓말을 했다.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자고 잘 먹고 있다고, 문제가 없다고, 나는 언제나 잘 웃는 아이였고, 자라서는 잘 웃는어른이 됐다.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때도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P 171 」
어떤 진실은 가치가없다. 그럼에도 지연은 계속 괜찮다고 거짓말을 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지연이 엄마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진실을 내 보인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잘못을 계속 이어갈 필요는 없다. 진실은 떄로는 숨기고 때로는 드러내야 하는데, 그걸 연약한 사람이 알기란 지혜롭지도 가능하지도 않는 것일까.

「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뒤에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 악의 없는 웃음을 보이면서 다른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흔하고 흔했다. 그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성질인지도 몰랐다. 그런의미에서 명숙 할머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고양이 같았다. 움직이는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걷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랬다. 고양이 중에서도 결코 인간의 무릎에 앉지 않고, 인간에게 치대지 않는 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늘 인간에게서 등을 돌러 앉고, 인간이 자신을 보지 않을 때는 멀리서 바라보다가도 눈길을주면 외면하는 척하는 고양이, 명숙 할머니는 그런 고양이를 닮아 있었다. 능숙하게 페달을 밟으며 재봉질을 하는 고양이라니.
- P 195 」
때로는 그런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악의 없는 웃음 뒤에 다른 마음을 품는 사람이 아닌, 치대지도않고, 그러다가 눈길을 주기도 하고. 아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에게 눈길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은 증조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 P 199 」
다행히 책에서는 그 다음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걱정과 두려움을 상시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한참 일에 미쳐 있을 때엔, 여러가지를 하면서도 그다음날 무슨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곤 했다. 영옥 할머니나 정선할머니 같은 시대적 상황에 비교하면, 비교도 가당치 않을 정도로 한 사람의 지극한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랬었다. 그리고 집이 힘들었을 때에도 그 다음날은 괜찮을걸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하루 저녁을 맞이 하는 게 힘든 적이 꽤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지않게 된 지금이 감사하고, 그런 생각을 내 지인중에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 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영옥아. 우린 다시 만난다이. 내 기걸 알갔어. 기래 생각하니 슬프지도 않누나. 결국은 다시 만날 테니 말이다.
- P 203-204 」
결국 다시 만난다는 말이 고맙다. 위로가 된다

「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 P 220 」
정말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없던 지나가는 남자, 영옥 할머니의 남편 길남선. 남선의 모진 말보다 명숙 할머니의 사랑이 할머니를 울게 하고, 모욕이나 상처조차 건드리지 못한마음을 건드렸다. 애정은 그런건가 보다. 그런데 애정은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배워야 하나 보다. 그랬다면 버거운 사랑이 아닌 좀더 위로가 되었을 텐데.

「 ˝그림, 넌 내 손녀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었을 거다.˝
˝어떻게 살았어요, 할머니?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살 수 있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정말 그럴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 P 230 」
할머니와 손녀의 우정. 그리고 위로.

「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날 아침 의사가 내게 귀리의 죽음을 알렸을때 느낀 감정이 슬픔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나는 안도했다. 나의일부는 안도했다. 귀리의 고통이 이제 사라졌다는 사실에, 고통을 받는 그애의 모습을 보고 겪어야 했을 나의 괴로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그 이기적인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 P 233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소중한 냥이의 죽음보다 무서운 건 실종이라고. 실종되면 어떤 불행한 삶을 살다가죽을지 모르니까. 귀리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안도감도 비슷한 게 아닐까. 내 야옹이들.... 귀리의 죽음은 귀리의 죽음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 - 새비야.
- 내레 아까워.
-뭐가.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다않아.
그 말에 증조모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 P 258 」
서로를 아까워 하는 마음. 그런 마음 그런 우정. 와 눈물난다. 증조모 정선(삼천)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의 마음이 이 책에서 제일 좋았다.

「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터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 P 271 」
길미선의 마음을 이 부분을 읽으며 알 수 있을 것 같다. 증조모도 할머니도 평범함이 쉽지 않은 삶이었다. 엄마에게까지.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숨을 죽여 살았나 보다.

「 아빠가 술 취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들이 와서 아빠를 말리자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삼촌은 그런 아빠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미소 지었다. 그런 그가 글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는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단 한 번이라도 공감해보기는 했을까.
- P 275 」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을하겠지. 정말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이 드는 상황이 있다면... 아하 한숨이지.

「 ˝하나하나 맞서면서 살 수는 없어, 지연아. 그냥 피하면 돼. 그게지혜로운 거야.˝
˝난 다 피했어,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 내가 무슨 기분인지도모르게 됐어.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가슴은 텅 비어서 아무 느낌도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피하는 게 너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말이야.˝
˝날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 있는 게 날 보호하는 거야?˝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끝내면 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P 278 」
피하는 게 꼭 정답이아니라는 걸 전반에 걸쳐 말해주고있다. 피하지 않는 게 계속 맞고 아프지만 피하지 말라고, 아프면 아프다고, 감정을 말하라고 작가는 말하는걸까.

「 새비 아주머니는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불위에 누워서 증조모가 말을 하면 눈짓으로 반응했다. 새비 아주머니의 시선은 증조모의 몸을 지나서, 마음을 지나서,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에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아직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증조모는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돌멩이를 안고서 내 동무야, 내 동무야, 말을 걸고 있다. 그런 작은 따뜻함이라도 간절해서, 하지만 사람은 너무 무서워서. 증조모는 마당 구석에쪼그려앉아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다. 그때 자신이 누구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간절히 부르던 사람이 바로 새비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을 증조모는 그녀의 시선 속에서 이해했다.
- P 288 」
영혼은 몸을 지나서 마음을 지나서 어떤 장소까지 다다르는 걸까. 우리는 만나기 전부터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 P 299-300 」
6월에 읽은 별것 아닌 선의에서도마찬가지였다. 별것 아닌 듯한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한다. 그래서 착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별것 아닌 호의가 중요하다

「 ˝감사해요, 할머니.˝
˝축하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다.˝
˝놀러올게요.˝
˝그래. 언제든 돌아와도 돼.˝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고,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밀려드는 잠에 몸을 맡겼다. 나는 희령을 떠나고 할머니를 떠난다...…힘들게 버티던 곳이었는데도, 언제든 떠나기만을 바라던 곳이었는데도 나는 할머니보다 이 헤어짐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P 321 」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는 말은 참 따뜻하다. 이런 말을 들을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그럴 일이 있다면 듣고 싶다. 말도 해주고싶고.

「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 P 336-337 」
한 사람의 삶을 측량하기 어렵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걸 나 역시 증조모, 할머니, 엄마, 지연을 보면서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 안에서도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만난다. 그애들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해가 지는 놀이터 벤치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시 혼자 학교에갈 채비를 하던 열 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울음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내 몸을 해치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스무 살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 P 337 」
지연은 이제서야 과거의 지연을 놓아 줄 수 있고, 다시 새로 시작할 수 있나 보다. 몽환적이고 느끼는 바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부분이 이제서야 무언가 꼬여진 매듭이 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 나는 오랜만에 할머니 집 소파에 앉아서 집을 둘러봤다. 텔레비전장식장 위에 처음 보는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가까이로 가서 액자를 들여다봤다. 액자 속에는 거북이 해변에서 나와 언니,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손을 잡고 서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액자를 들어 보였다.
할머니는내가하려는말이무엇인지잘안다는듯이미소지으며고개를끄덕였다.
- P 338 」
따뜻했다. 엄마가 할머니를 찾아간 거이겠지? 그리고 엄마도정연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새로운 연대가 있는 게 아닐까... 나만의 생각인가. 완벽한 마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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