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에 첫 출근을 한 날,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 한번 했었다고 답하고는, 더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읽고 작년에 이혼했다고 덧붙였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뛰었고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른 주제로 말을돌렸다.
12 - P12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13 - P13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이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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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할머니가 말했다.
"아가씨, 내 손녀랑 닮았어. 그애를 열 살 때 마지막으로 보고 못봤어. 내 딸의 딸인데."
할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손녀 이름이 지연이예요, 이지연, 딸 이름은 길미선, "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나와 우리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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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같이 먹어야 맛이야."
할머니의 말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은 어떤 사람과 먹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 다르니까. 혼자 넷플릭스를보며 밥을 먹는 게 훨씬 더 편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법은 맛이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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