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행복‘이 화두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파리에서 살 때 한 프랑스 친구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왜 한국인은 휴가를 와서도 즐거워하지 않고 모두 화를 내지?" - P4
내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똑같이 오래된 낡은 집에서 살면서 초라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고풍스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이 같지 않다. 이사를 여러 번다닌 것을 ‘집 없는 자의 설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유목민같이 자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인생은 분명히 다르다. - P6
최소한 내가 만난 프랑스인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자기 인생을 성공했다‘느니 실패했다‘느니 하는 정의를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나는 나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였다. 그야말로 시크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 남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이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이기주의적 주관‘ 또는 쌀쌀한 행복‘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 - P7
사람은 누구나 편한 것을 좋아하고, 편하기를 바란다. 편하다는 것에는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된다. 즉 ‘편리함convenien‘과 ‘편안함Comfortable‘이다. 편리하다는 말의 사전석인 정의는 ‘편하고 이로우며이용하기 쉬운 것‘이다. 편리함이란 내가 힘을 적게 들이고도 원하는것을 빨리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편안함이란 마음이편하고 걱정이 없는 감정‘을 말한다. 특히 모든 것이 익숙하고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식이 필요 없는 상태다. 그런데 사람들은 편리함과 편안함을 쉽게 혼동한다. - P13
파리에 살면 살수록 나는 무언가 할아버지 시대의 자명시계처럼 구닥다리 톱니바퀴가 고장이 날 듯하면서도 용케도 잘 돌아가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그에 동화되었다. 그 편안함의 정체는 바로 삶이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프랑스식 편안한 삶의 정체다. - P25
젊을 때 파리에서 조그마한 추억이라도 하나 만들어둔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 노년이 되어 파리에다시 간다면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살아나 가슴이 촉촉해질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노벨상 수상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파리를 영원한 젊은이의 도시‘라고 부른 이유도 그때문일 것이다. - P29
미국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마크 Marc Schoen 은, 현대인은 불편을즉시 해결하지 못하면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므로, 세상은점점 편리해지는데 우리는 갈수록 불편해진다고 했다. - P32
죽음이 필연이라면 그 중간에 벌어지는 일들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숭고한 일이 된다. 또 인생이 죽기 전까지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자기 감정과 느낌을 내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항상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생활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 P42
프랑스인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우리와 다르게 바라본다. 이는 메멘토 모리 전통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살아 있을때만 감정을 느낀다.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죽은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이라면, 그것도 단 70~80년만 주어졌다면 슬픔, 절망, 우울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행복, 사랑 같은 감정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것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출이유가 없다. 이것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잊지 않고 사는 프랑스인의 인생관이다. - P49
영원하지 않아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중해 문화의철학 즉 삶은 죽음이라는 엔딩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철학자들은 ‘메멘토 모리‘라고 하는데, 파리야말로 그 자체가 거대한 메멘토 모리라고 말할 수 있다. - P57
그저 항상 같이 있었고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던 것처럼 그냥 헤어지기 바로 전날로 돌아간다. 한 번도 자리를비우지 않은 것처럼 내 빈 자리가 금세 채워지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친구들의 이런 우정 표현을 ‘차가운 우정‘ 이라고 내 나름대로 이름 붙였다. - P96
프랑스인은 친구라는 이름을 상당히 아껴 쓰며, 진짜로 친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만나서 술 한잔을 하면 호칭이 형 동생으로바라며 금세 친해지는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우정이 진짜 우정이고, 어떤 우정이 ‘아는 사람일 뿐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프랑스인은 연인관계는 드라마틱하게 빨리 발전해도 진정한 우정은 천천히 익어가듯 발전시킨다. 저온 숙성하는 치즈 같다고나 할까? 프랑스인은 연애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남녀관계 속에서 찾기 어려운 영구적인 연민은 친구 즉 아미와 나누려고 한다. - P107
반면에 프랑스인은 원근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상대편이 원하는 거리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예의로 본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슴도치‘ 비유법으로 아이들에게 전수된다. 고슴도치가 멀리 같이 가려면 서로 찔리지 않을정도의 간격, 서로 잊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지키면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 P109
이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솔리대리테solidarite (유대, 결속, 상관성)가 넘치는 사회를 지향한다. 즉 모든 사람이 진정한 친구(아미)가 되어 프랑스 중세의 한 마을처럼 긴 테이블 위에 막 추수한 풍성한 음식과 와인을 차려놓고, 주위에 죽 둘러 앉은 사람들과 철학, 미술, 인생에 대해 상대편이 내 편인지 적인지 신경 쓰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사회다. 이것이 프랑스인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공생convivialit‘의 개념이다. - P112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예를 들어 며느리를 남에게 소개할 때 내며느리‘라는 식으로 나의‘ 즉 소유격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내 아들의 아내 또는 연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은 그 사람이 ‘내‘사람이 아니라 ‘내 아들‘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한다. - P119
"너무 쿨하고 멋져…. 근데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굴할 수없어." 하지만 프랑스인의 그런 모습은 ‘쿨‘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꽉 차 있고, 심지어 배우자나 가족일지라도 타인을 자기 중심에 두지않는 이기주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이기주의라는 단어는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 P127
하지만 전자는 남 신경 쓸 것 없이 자기 만족도가 높은 삶을 좋게 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프랑스인의 이기주의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서로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는 나름의 균형과 질서가 있는 것 같다. - P128
프랑스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괴로운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는 여정이 아니라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기대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어른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어릴 때 자유를 실컷 누리고 크면서 점차 하향곡선을 긋기보다는 어릴 때 조금통제를 받더라도 어른이 되는 것이 기대되고 기다리게 되는 편이라고 할 것 같다. - P152
노라나 뱅상이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누가 성공했다느니 또는 실패했다느니 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그저 인생의어느 한 기간에 같은 배를 타고 여행한 친구지만 지금은 저마다 다른항구에서 내려 자기 갈 길을 간 사람들 같았다. - P174
또 프랑스는 사회 계층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어서 계층마다 즐기는 문화, 말투, 정서,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다. 설령 학업을 통해 상류사회에 진입을 하더라도 음식, 복시, 문화적 식견 등 세밀한 부분에서 차별이 심해, 결국 지기가 살던 동네와 계층으로 다시 내려오는 사람도 많다. 사회적 성공의 비용이 너무 비싸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이 워낙 낮기 때문에 성공을 위해 올인하는 것은 프랑스 사람에게 너무 ‘가성비‘가 낮은 선택이 된다. - P178
미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성취가 성공의 척도라면 프랑스인에게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자기가 즐기는 레저 스포츠나식사 같은 이벤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는지를 성공의 척도로 본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 P189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내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그 시간에 먹고 놀면서 느끼는 즐거움‘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어쩌면 프랑스인은 진짜 성공한 인생이란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고, 진짜 행복한 인생은 행복이란 것을믿지 않고 주어진 순간에 충실한 인생일 수 있다는 결론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것은 아닐까? - P193
"그것이 미테랑과 올랑드의 차이지. 두 사람은 급이 달라." 이처럼 올랑드 대통령을 향한 프랑스인의 비판은 무슨 도덕성에관한 것이 아니라 미적인 감각에 대한 것이었다. - P201
일국의 국가원수 중에 동거하는 여성이 바뀌는 경우나, 엄마뻘의이혼 여성과 결혼한 경력이 있는 경우는 프랑스 말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나이 들 때까지 정치적 성공을 위해 독신으로살다가 ‘나는 나라와 결혼했다‘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더 이상하게바라볼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질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느냐면서 말이다. - P202
나도 실연을 당하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에서 로렐린을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남자는 그 남자의 리브스토리의 합이지." 다시 말해 남자란 사랑의 기승전결을 여러 번 겪어보면서 차차 자신이 누구인지를 빌견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실연이란 하나의 러브스토리가 끝나고 다음 스토리가 시작하는 순간일 뿐이며, 자기에 대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랑이라는 것이어차피 영원히 갈 수 없다면, 그리고 어차피 연애란 엔딩이 있는 소설같음을 알고 시작했다면, 그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멋진 이야기였는지가 중요하지, 새드 엔딩이 있다고 해서 나쁜 소설은 아니다. - P208
연애에 목적이 없듯이, 인생은 즐거워서 사는 것이지 이유가 있어서사는 것은 아니다. 연애가 어떻게 끝나건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시간을 보내봤다는 것이 중요하듯이 인생도 살아봤다는 것이 중요하지 성공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그런 프랑스인은 더 큰 집, 더많은 편의시설, 더 많은 돈과 소비로 행복을 사려는 영미인과 그들의문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딱하게 생각한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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