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 P19
고급스러운 모로코 가죽 장정의 아름다운 책들이었다. 그것들을 나는 화물열차에 가득가득 실었고, 서른번째 차량에 책이 채워지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행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이 장서들은 그곳에서 킬로그램당 1코루나에 팔릴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보고 놀라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안에는이미 불행을 냉정하게 응시하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자리했다. 그렇게 나는 파괴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P23
나는 카인처럼 이마에 표적을지닌 채 걸어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가 그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나를 불러줄 수도 있었으련만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 P32
팔 년 새에 9센티미터가 줄었다는걸 맨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침대 위로 솟은 책들의 천개를올려다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키는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 몸이 구부정해진 것이다. - P33
기체나 금속을 비롯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투쟁을 통해 생명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분열을 겪듯이 말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것들에 균형을 부여하려는 욕구에 의해 조화가 이루어지며, 세상이 통째로 휘청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않는다. 정신의 투쟁 역시 여느 전쟁 못지않게 끔찍하다, 라고 한 랭보의 말이 적확하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 P37
그녀는 도도하게 몸을 세운 채 레너 호텔을 떠났고, 그렇게 노자의 말도 실현되었다. 치욕을 겪고 명예를 지킨다는 그녀 같은 사람이 바로 그 명백한 사례다... - P47
절망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꽉 맞잡은 양손처럼 내 압축기의 아가리가 『도덕경』을 분쇄하는 광경을나는 지켜본다. 그러고 있노라니 먼 과거로 되돌아가 만차의 삶 한 토막과 아름다웠던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그 모두의 배후에서, 깊디깊은 땅 밑 하수구를 흐르는 더러운 물소리가 들린다. 그곳에서 두 종족으로 나뉜 쥐들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름다운 하루다! - P47
예수는 기도를 통해 현실을기적으로 만들려고 한 반면, 『도덕경』의 노자는 순진무구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법칙들을 유일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을나는 알았다...... - P51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Progresstus ad futunuim, 미래로의 전진‘ 이라는 뜻)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 (The regressus ad originem, 근원으로의 후되‘라는 뜻) 이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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