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또 한권의 책과 함께 오래된 친구가 입원하는 내게 건네 준 위로와 응원의 선물이었다. 병원 근처에서 골랐다고 하는데, 그 병원 근처 큰 서점은 없었던 것 같고, 동네 서점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무언가 포장이 깔끔했었다.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것 같은 마이프렌 (그 친구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며, 어쩌면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도 이렇게 부르는 지도 모르겠다)이 이 책을 고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행을 좋아하고 때로는 혼자 하는 여행도 했던 내가 코로나와 입원으로 더 이상 여행이 쉽지 않았기에 선택했을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책의 내용을 떠나서 나에게 적합한 리스트를 고민했을 거란 생각에 이미 책은 애틋해졌다.

작가는 예상외로 의대생이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입학하여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의대생으로 저자는 본인의 나이 많음에 힘들어하는 기력이 책 내내 가득 했으나, 책을 읽는 나에게는 마음 둘 곳 없는 친한 후배나 동생, 혹은 마음 약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그래서 단순한 유럽여행이 아니라 혼자 떠나 유럽여행이고, 혼자 무언가를 다시 해보는 작가의 미흡하지만 성장 에세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이라는 에세이에와는 달리 책의 어느 정도 부분은 의대를 다니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앞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작가의 지금의 현실에서 다시 작가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는 형식이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건 어느 나라에 가서 어떤 여행을 했고 그 다음은 어떻고 식의 과정을 밟아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크게 세 장으로 나누어 작가의 느낌과 생각, 결심을 같은 카테고리로 묶는다. 여행에 중점을 둔 에세이기는 하나, 여행을 도구로 삼은 본인의 성장을 담은 에세이 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에게 응원을 내비치며 때로는 공감도 한다. 이 부분은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 또 다른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낮설어서가 아닌 성향적으로 싫은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한다.

책을 읽으며 한번도 영국에 가보고 싶단 생각은 안했는데 문득 런던, 로즈힐을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영국을 가는 건 너무 고전적이라 생각했는데, 쉬운 사람인 나로서는 몇 문장과 구절을 보고 설레이고 말았다. 그리고 애플파이. 홈메이드 애플파이를 먹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먹어본 애플파이는 맥도날드의 저가 애플파이를 시작으로 파리바게뜨 같은 홈메이드의 따끈따끈 한 것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베이커리 카페에서라도 꼭 애플파이를 먹고야 말겠다라는 소소한 결심을 했다. 나도 엇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에스토니아에서 혼자 핫케익을 시켜 먹었는데, 그 양과 맛에 거의 감동을 받으며 천천히 음미하고, 그 이후로도 핫케익에 대한 애틋함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보다 더 예전 10년 넘게도 지난 도쿄에서 먹었던 바나나파르페도 비슷하다. 원래 디저트나 간식에는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그 한끼에는 추억과 그 때의 마음이 고스란이 담겨 있나 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수많은 오타들은 책에 몰입하는 데 때로 방해를 주며,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 친구들에게 섭섭했던 세세한 사건의 흐름과 이름 그리고 그 당시의 작가의 마음으로 보는 건 어쩐지 불편함을 주었다. 그 친구들이 보면 이 건 소설이 아니니까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고 최소한 섭섭할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넘어서 어쩌면 작가는아직 본인도 모르는 남아있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안타까움. 그리고 작가가 서른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어리구나 하는 아쉬움. 그리고 나도 내 마음이 온전하지 못한데 무엇을 논하리요 하는 민망함.

아래 목차를 남겨본다. 목차만 보더라도 마음이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은 추후 다시 읽어 보고 코로나 이후 어떤 곳은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 이런 흔들리면서 다시 단단해지고, 다시 흔들릴 수 있는 사람. 또 단단해질 수 있는 사람. 그런 분이 의사 선생님이 되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건 환자의 마음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또 한 번 단단해진 시즌 2 느낌의 작가님을 기대해 본다.


목차
들어가는 글 | 되찾은 방학
제 1 장 다시 오지 않을, 그날
1. 처음이라는 의미
2. 내 앞에 열린 새로운 길
3. 의대 본과 1학년
4. 학술대회
5. 그래! 떠나는 거야!
6. 내게도 날개가 있을까?
제 2 장 유럽, 길 위에 서다
1. 로맨틱한 파리
2. 프랑스의 작은 마을
3. 젊은 런던
4. 혼자 남겨진 런던
5. 무서운 브뤼셀
6. 아, 살고 싶다. 독일!
7. 그리운 비엔나
8. 한번이면 좋고, 체코
제 3 장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1. 대한항공 마지막 탑승객
2. 아름다운 세느강 위에서의 첫날 밤
3. 오랜만에 나이트 라이프
4. 지금은 해리포터의 옥스포드
5. 그와의 만남
6. 그와의 이별
7. 위로의 동행, 체스키 크롬로프
제 4 장 세상을 배우다. 나를 만나다
1. 런던에서 만난 세익스피어
2. 영국의 의대 박물관
3. 나의 꿈, 네덜란드
4.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모차르트
5. 어울리고 싶은 뮌헨
6. 안녕, 프랑크푸르트
제 5 장 혼자인 사람들을 위하여
1.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2. 내 삶의 의미를 찾아
3. 소중한 내 인생
4. 혼자, 그리고 함께
5. 아직도 혼자여서 망설이는 당신에게
6.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마치는 글 | 다시 날아올라!


인상적인 구절

방학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시험을 여러 개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6p

‘언령‘이라고 들어봤을까.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영적인 힘을 말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내가 내뱉은 말이 언젠가 내 귀에 들어와 나를 일으킬 수도, 또는 넘어뜨릴 수도 있다. 37p

어느 누구도 나의 하루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지만, 함께 해줄 수는 있다. 41p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어쩌다 흐른 물이 또흐르고 흐르다 보면 물길이 생긴다. 잊고 있었던 관심사가 우연히 런던의 한모습을 보고 툭 하고 튀어나왔다. 따르다 보니 런던에서의 여행이 어느새 과거의 간지러웠던 궁금증을 채워가고 있었다. 때가 이르고 조건이 갖추어져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빈방 한쪽을 채운 것처럼, 지금 갈급한 문제도 언젠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75p

서둘러 숙소에 들어가 비 맞은 흔적을 다 씻어 내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편히 누워있었다. 아까의 쓸쓸함은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갔는지, 컵라면 냄새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100p

한 사람의 인생은 자기 자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까지 그 흔적이 남는다. 각자의 인생이라는 굴레가 서로의 굴레와 만나기도하고, 겹치기도 한다. 118p

런던과 로즈힐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때에도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간에 도시를 감싸고 비추는 빛은 그때에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장관을 만들었다. 그 시간에만 주어지는 유일무의한 특별한선물이었다. 125p

손글씨로 메뉴가 써있었다. 홈메이드 애플파이와 라떼를 시켰다. 이 카페라면 홈메이드는 무조건 맛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161p

오스트리아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약간 따뜻하다. 차가운 도시남의 외모를지녔지만, 대가족 안에서 자라서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165p

매일 걷는 길 위에서 어떤 감정이든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감정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행복한 감정이든, 슬픈 감정이든, 그순간 자기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고, 그 순간의 집합이 한 사람의 삶이다.

그 삶의 조각들이 나라는 사람을 이루어간다. 더는 강요받는 감정과 목표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193p

학교로 돌아가면 똑같은 문제가그 자리에 있겠지만 괜찮다.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여행의 어떤 한순간으로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다.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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