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냄새와 비 냄새가 훅 끼쳐오는 그 자리에 서서 이어폰 안의 연주에 귀 기울인 채, 나는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했다. 단순한 음률이 미세하게 즉흥 변주되며 고조되는 찰나, 연주자의 감정이 서서히 차오르는 찰나를 느꼈다. 온몸의 솜털 하나하나가 일어 그것을 오롯이 감지했다. 빗물에 구겨진 낡은주름치마 입고도 난 세상 저편 어딘가로 펄펄 날고 있었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지금 이 선율을 느끼고 있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 P61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 P62

이렇듯 한심하고 불완전한 존재로도 누군가에겐 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그가 자기 한계를알면서도 사제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끔 하는 동인이 되었으리라.
- P69

다만 60이면서 90인척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70, 80을 다시금 채워가는 지난한길에서 이탈하지 않는 묵묵함을 지니려 한다. 길게 내다봤을때 축복인 지금이 우리에게 항상 열려 있기를.
- P78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88

이 글을 쓰던 중에도 또 한 건의 아동학대에 대해 들었다.
극악한 부모라는 자들에게 더 무거운 형이 언도되길 바라는청원에 목소리를 얹기보다는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가 "그러니까 집안 내력이 중요한 거야", "아무튼 화목한 가정에서사랑받으며 자란 사람과 사귀어야 해"라는 식의, 선량한 이웃이 무심코 던진 말과 시선에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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