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했어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
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결혼은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와 그룰이 사뭇 달라졌을 뿐더러, 다양한 결혼 방식이 시험되고 있으며 가족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이 그림에서 제시하는 성역할로는 고정시킬 수 없는 새로운 요소가 충분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성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플이 서 있는 장소다. 이곳은 교회나 궁정 같은 중세 시대의 중요한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 부부의 사적인 생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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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Woolf, 1882~1941)는 『자기만의 방』(1929)에서 여성뿐 아니라 모든 작가에게 "돈과 자기만의 방" 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경제력과 독립된 개인의 공간은 개인을 탄생시키고 완성하는 중 요한 요소다. 앞으로 만날 17세기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사적인 공간이 진화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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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느 사람은 글을 남긴다. 개인은 자기를 기록함으로써 태어난다.
기로으 스토리의 시작이다. 그리고 스토리는 역사로 나아가는첫 단추다. 17세기 초엽부터 글을 쓸 줄 아는 개인들은 ‘일기‘와편지‘라는 아주 사적인 개인 기록물을 다양하게 남겼다. 자화상의 탄생은 이런 의미에서 문화사 전체에서 가장 이른 개인의 자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 터번을 쓴 남자의 초상화〉는반 에이크의 자화상이다. 액자의 하단에는 "반 에이크가 나를만들었다"라고 써 있다. 여기서 ‘나‘는 반 에이크 자신이다. 이런표기는 자화상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에 자화상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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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에이크가 그린 초상화 중에는 "진정한 기억" 이라고 써있는 작품이 있다. 위대한 영웅은 아니지만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한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의미다. 평범한 개인은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역사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 없는사람이 아니다. 자화상은 한 개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그 현존 자체로 의미가 있고 기록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이 인정되는 순간에 그려졌다. 우리 모두가 화가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반 에이크의 신념인 "내가 할 수 있는 한", 나 자신에 대한충실성으로 삶을 만들어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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