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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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을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아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 응답해야 하는 것. 그거도 사랑뿐이다.

2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3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병에 대한 면역력이다. 면역력은 정신력이다. 최고의 정신력은 사랑이다.

4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7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11 어떻게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14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28
‘희망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그 희망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강의 중에 자주 인용했던 카프카의 희망 변증론. 그 때 마다 뒤의 문장만을 붙들고 희망의 부재와 부당한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만 따지고 물었었다. 지금은 앞 문장이 비밀스러운 화두처럼 여겨진다.

31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발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생각.

36 베란다에서 세상을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51p
모기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 물가에 앉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건 여기가 쉼 없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45 already but not yet

詩 박노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숙여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46 문득 파란 버스가 풍경 안으로 들어와서 정류장에 선다. 그리고 떠난다.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56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 나의 삶을 꼭 붙들어야 한다. 집 떠나는 엄마의 치마폭을 붙들고 놓지 않은 아이처럼.

57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미루었던 일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써 이 불가능한 삶과의 투쟁이 무슨 소용인가.

59 나 또한 나의 하루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자기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60 “답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건 생각하지도 말아요. 그냥 청결한 채소를 먹고 몸을 청결하게 만들면 그만인 거세요. 그게 답이라는 걸 모르나요?”

62 고백하자면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모든 것을 걸고 싸워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싸움은 자체가 수단이고 목적인 순수하고 절대적인 싸움이다.

74 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73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76 어제 누군가가 말했다.
“제가 힘들어하면 선생님은 늘 말하곤 하셨어요. 그냥 와줘. 놔두고 하던 일 해...... 그 말씀을 돌려드리고 싶네요”

에브리맨의...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79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둘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85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88 왈칵 솟으려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그래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

116 사이사이 지나가는 천진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생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중립의 시간이 있다. 그 어떤 불행의 현실도 이 불연속적 순간들, 무소속의 순간들, 뉘앙스의 순간들을 장악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다. 그래서 불행의 현실들 속에서도 생은 늘 자유와 기쁨의 빛으로 빛난다.

122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133 바로트에 비하면 나는 사실 아주 소량을 (물론 아주 중요한 것을) 잃었을 뿐이다. 그에게서 동병상련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기연민은 치졸하고 가엾다.

134 운명의 한 해가 간다. 해는 가도 운명은 남는다. 나도 남는다. 나와 운명 사이에서 해야 할 일들도 남는다.
조용한 날들을 지키기.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136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143 응급실은 삶과 죽음이 부딪히는 경계 영역이다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사람들은 전화를 걸고 받으며 거래를 하고 통장 번호를 주고받는다. 병이 들었다고 생활이 용서해주는 건 아니니까.

146
소리가 있다.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살아 있는 소리.
일상의 소리.

150 프루스트의 공간
프루스트의 소설 공간은 두이다. 하나는 생의 공간. 이 공간은 점점 더 수축하고 그 끝에 침대가 있다. 이 침대보다 더 작은 공간이 관이다. 또 하나의 공간은 추억의 공간. 이 공간은 생의 공간이 수축할수록 점점 더 확장되어서 마침내 하나의 우주를 연다. 그것이 회상의 공간이고 소설의 공간이다.

152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애도 일기>는 슬픔의 셀러브레이션이다. 디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그건 무력한 상실감과 우울의 고통이 아니다. 그건 사랑을 잃고 ‘비로소 나는 귀중한 주체가 되었다’는 사랑과 전재의 역설이다.

153 사랑과 죽음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건 나의 죽음이 누군가를 죽게 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나를 죽게 만든다는 것이다.

157 초의 선사는 추사가 죽고 두 해 뒤에 망자의 묘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리는 법이구려.”

초의(草衣, 1786~1866) 선사는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운흥사(雲興寺)에서 출가해 19세에 대흥사(大興寺)의 완호(玩虎) 스님에게서 구족계(具足戒)와 초의라는 호를 받은 승려이자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부흥을 이끈 대표적인 차인이다.

158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우를 보냈던가. 붙들었던가. 모르겠다. 다만 세상과 삶의 부조리만이 깊이 가슴에 각인되었을 뿐. 그때 아우는 떠나는 자였고 나는 보내는 자였다. 그사이 세월이 제자리로 돌아온 걸까. 지금은 내가 떠나야 하는 자리에 선 걸까. 오늘 나는 여기에 왜 다시 왔을까. 그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나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오후에 날이 흐리더니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67.
하지만 먼 하늘을 보면 가는 봄을 너무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오고 가고 또 가고 다가오는 것들- 생은 덧없어 가지만 또 도래한다. 소멸은 안타깝지만 덧없음이 없으면 저 빛나는 생의 찬란함 또한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170. 프루스트:
“......그러나 우리가 낙담해서 문 찾기를 그만두려 할 때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문은 열린다.”
문은 언제 어디에서 열릴까.

172. 혹시 울음도 연주가 아닐까. 지금 내가 정말 울면 그 눈물들이 새처럼 음표가 되지 않을까. 추락하는 눈물들이 어떤 노래가 되지 않을까.

174. 응어리는 이미 둔 바둑판처럼 남겨두기로 하죠

175. “오 초라한 고결함이여. 너는 다만 이름뿐이겠지만 나는 너를 진정으로 공경했다 그러나 이제 너는 가엾은 운명의 희생물이 되었구나.”
브루투스의 마지막 말

188. 나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만함을 알게 하고 경험케 한 부모님에 대한 기억.

193. 다시 프루스트:
“우리가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그때 우리를 구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그 문을 우리는 우연히 두드리게 되고 그러면 마침내 문이 열리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되찾은 시간>

202.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ᄃᆞ.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203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이...... 이것만이 사실이다.

204.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이 세상을 마지막까지 사랑할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존재이고 진실이고 의무이다.

220. 아침. 다시 다가온 하루. 또 힘든 일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다시 도래한 하루는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224. 첼로를 켜는 노회찬 의원의 사진은 감동적이다. 그 사진은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이 하이네에게 시였듯 노회찬 의원에게는 음악이다. 그런데 음악이란 무엇이고 어떤 세상인가. 그것은 사랑과 꿈을 간직한 가슴이고 그 가슴을 지닌 정치와 정치가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이다.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를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했던 진실 그건 다름 아닌 사랑과 꿈 그리고 정치의 변주곡을 연주하는 그의 첼로였으리라.

226.
화해.
다투지 않기.

233.
적요한 상태.

234.
내 마음은 편안하다.

후기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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