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는 시각에 편중된 편이라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폴로의 대표곡들과 대표곡이 아닌 곡들을좋아했다. 어느 쪽이냐면 대표곡이 아닌 노래들이 더 좋다고 여기면서, 사운드를 산뜻하고 화려하게 쓰는데도 어딘지본질적인 느낌이 나는 곡들이었다. 척추로 색채감을 느끼게하는 음악을 쓴달까,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이해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사가 정말 좋았다. 좋은 음악가인데다 세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27p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다. 이쪽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빙글빙글, 그를 가운데두고 궤도를 돌 수 있다면. 29p
"고마워요. 오늘 그런 말을 듣는 게 정말 필요했어요." 그날 아폴로가 건넨 피크는 모서리가 형편없이 닳아가고 있지만, 주영의 마음은 닳지 않았다. 31p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익숙해져볼까 하고 이것저것 찾아봤어요. 재밌더라고요, 인터넷." "어디에 익숙해진다는 거야?" "그냥……. 여기에." 32p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33p
주영이 아폴로를 발견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정말이지 다채로운 톤으로 들어왔다. 영하 40도의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 112도의 분노로. 36p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 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37p
평소에는 거의 해체했다 다시 잇다시피 혁신적인 변화를주기도 하는 한아지만, 애도하는 손님들이 찾아오면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아주 살짝만 새로움을 더한 다. 그 새로움이 슬픔을 조금 지울 수 있을 정도로만. 38p
할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 아까 어쩐지 안아주고 싶더라. 부적절할 것 같아서 관뒀지 만 포옹이 자연스러운 문화권이라면 안아줬을 텐데." 40p
다행히 모두 흔쾌히 응해주었다. 아티스트의 실종에 연관된 것이 그들에겐 일종의 흥미진진한 이벤트인 듯 보였다. 나도 그냥 이벤트였으면 좋겠어. 이렇게 모든 중심을 다 내어주지 않아도 되는, 잠깐의 이벤트면 좋을 텐데, 서늘한 안쪽을 숨기며 주영은 생각했다. 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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