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면 기사 제목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16세 소녀, 주현절 케이크 때문에 부모와 절친한 친구를 식칼로 살해. 122p
"거 참 이상하네요. 엄마는 크리스타가 있는 자리에서크리스타 얘기를 할 때는 크리스타라고 하면서,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얘기를 할 때는 ‘개‘ 라고 하는군요." "너, 정말 문제 있다." 머리를 가로저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123p
편견의 안개, 이 답답함! 사람볼 줄 모를때 나도 이러나..
부모님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순간 나는 부끄러웠다. 이일에서 내가 한 역할이 고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그런 역할을 기꺼이 떠맡은 것은 크리스타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모든 거짓말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아니다) 우리 가족을 파괴하려는 그녀의 욕망에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42p
불행이 가져다준 좋은 점도 있었다. 나의 방과 책 읽을권리를 되찾은 것이다. 이 시기만큼 책을 열심히 읽은 적이 없었다. 과거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도 나는 탐욕스레책을 읽었다. 책읽기를 도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책읽기란 가장 정신집중이된 상태에서 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묘하게도 그것이언제나 흐리멍텅한 상태로 현실에 뒤섞여 있는 것보다 덜두렵다. 167p
박해받고, 고통받는자는 결코 ‘망각‘ 될 수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를 집요하게 박해하는 적이야말로 ‘망각‘ 으로부터, 죽은 삶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주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아멜리 노통브에게 적이 없는 삶이란 권태요. 무의미와 동의어이며, 그래서 그는 적과 화해 없는 공존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적과 화해한다면 더 이상 적이 될 수 없지 않은가? 더이상 적이 없다면, 또 다른 적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사랑의 파괴』)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집요하게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적‘ 의 존재. 그에게는 "이세상에서 없어서 안 될 것" 이 바로 이 ‘적‘ 인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새 작품을 출산해내는 그다. 을 가을에는 또 어떤 형태의 적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2004년 여름 끝 무렵 백선희
184p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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