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첫 기억은 뭐야?" 느닷없는 아내의 질문이었다. " ......첫 기억이라니?" "음......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 말이야.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책을 읽다말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의 첫 기억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보지만 뚜렷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처럼 오줌을 싸고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닌 적도 없고 엄마 젖냄새가 그리워 파고든 기억도 없다. 워낙 기억력이 좋지 않다보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억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일생이 별반 큰 무리없이 흘러갔던 터라 특별히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없는 듯 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오래된 추억이 없을까 하고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하게 만든 것은 김도영 작가의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이다.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병중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동창들과 방문한 병원에서 주인공인 소설가는 뜻밖의 말을 선생님께 듣게 된다. 바로 학창시절 받았던 반성문 500매에 대한 벌칙을 선생님께서 기억하시고 아직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거다. 반성문 500매에 대한 벌은 저자가 백일장에 내야 하는 글을 학생잡지에서 표절을 해서 나름 잘 포장을 해서 내었던 것을 선생님께서 발견하시고 받은 벌로 이리빼고 저리빼고 결국은 선생님께서는 반성문의 제출에 기한을 두지 않겠다 말씀하셨고 그러다 보니 졸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기억이 하나 있기는 하다. 학교 독후감대회에 글을 내야 하는데 책은 읽었으나 글을 쓰는 재주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난감하기 이루말할 수 없었고 어린마음에 책 앞부분에 있던 저자의 말과 작품소개등을 적당히 조합해 제출해 상을 받았었던 황당한 일이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창피한 일이지만 이 책을 읽기전 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가는 반성문을 쓰기 시작한다. 반성문은 그에게 과거를 들여다 보는 창이 되어 준다. 시골동네 정류장, 여학생, 첫사랑, 그림, 순수했던 마음, 친구들, 하나하나 돌아보는 그 길에는 정말 많은 추억들이 쌓여 있었다. 글은 따뜻했고 웃음짓게 했으며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쟁터 같은 삶속에서 매일을 지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어린시절은 있었고 철없던 시절의 기억속에는 나름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기 위해 애썼던 모습들이 있었다. 원고지 오백매짜리 반성문에 담긴 반성문은 반성문이라기 보다는 잃어버렸던 소중한 어떤 것들을 기억해 내기 위한 보물찾기였는지도 모르겠다. 한번의 거짓말과 한번의 변명들이 반복되어가면서 기성세대에 물들어 버린 우리들이 돌아봤을때 깨끗하고 맑았던 영혼을 가진 그 시절에 남겨둔 무엇을 찾기 위한 ... 이런 글을 읽고 나면 참 마음이 그렁그렁해진다. 내게도 추억을 공유할 친구가 있었고 나에게 애정을 쏟아주신 선생님이 계셨을 테고 숙제와 시험에 힘들어 하면서도 즐길 수 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을 텐데.... 그 시절은 다 어디로 언제 사라진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