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유려하게 쓰고 싶어 이 책을 펼쳤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책을 더 잘 읽고 싶어졌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쓰는 것보다 잘 읽는 것에 대한 조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작가가 인용하며 수업에 활용한 다른 작가들의 글, 맥락,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는 글에 내던져지면 자주 당황했지만,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맥락을 잘 읽어내는 독자, 풍요로운 독서 생활 속에 파묻히는 독자가 되기 위해 2번, 3번 읽을 책이다.

우선 잘 읽어내는 독자가 된 이후에 나의 이야기를 탐구해 보고 싶다. 비비언 고닉과 함께라면 원료일 뿐인 나의 경험도 이야기로 바뀔 것 같다. 믿음직한 작가의 책은 든든한 믿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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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하는 엄마는 늘 웃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손님들을 맞이할 때 고개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손은 앞으로 모은 채 끄덕끄덕 인사를 했다. 이상하게 비굴해 보이기도 해서 나는 자주 속상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자주 식당에 머무르곤 했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곤란을 겪는 상황도 여과 없이 자주 접하게 되었다.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자주 화를 내거나 거만하게 굴었다. 엄마는 그들의 화를 모두 등에 이고 있는 사람처럼 몸을 앞으로 구부려 굽신거렸다. 눈은 슬퍼 보였는데도 엄마의 입꼬리는 늘 올라가 있었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면 엄마는 자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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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 목정원 사진산문
목정원 지음 / 아침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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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와 유의미. 기억.

활자와 사진을 읽어내려가며 떠오르는 내 안의 활자들.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새기기 위해 저 단어들을 적었는지. 기억 하나 감정 하나 손에 쥐려고 해도 흩어져 버리는 모래알, 물, 먼지처럼 없어져 버리니 나는 다급하게 몇 글자만 주워 적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망막에 새기고 싶은 풍경을 담아내지 못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이곳에 있다. 미래 언젠가 끝내 상실할 것이 분명한 사랑하는 이를 미리 떠올리며 ˝두고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갖고 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귀퉁이에서 바라본다. 놓친 후에야 뒤돌아보는 나의 지나간 마음들이 분명하게 그곳에 함께 놓여있다.

작가는 시인의 눈을 가지고 시어를 쓰듯 나에게 말한다. ˝이 답장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매 순간 조바심을 내며 종종거리던 나를 잠시나마 멈추게 한다. 나 또한 그 옆에 서서 숲을 바라본다. 사진 속 숲과 내 망막에 새겨지는 숲은 같을 수 없을 테지만. 우리 사이에 지나간 시간은 각자에게 남을 테니.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사실은 같을 것이라는 단순한 그 사실이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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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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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의 산문 <청춘의 문장들>과 <시절 일기> 를 진지하게 읽었다. 앞서 읽은 것들에 분위기를 맞춰 이번에도 이 책을 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산문을 여는 즉시 촥 가라앉을 것을 기대하며 그러고 싶은 마음일 때를 기다렸다 이 책을 맞이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책을 펼치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의 산문집과 조금 달랐다. 산문집을 여는 에피소드는 작가가 실제 완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책 읽기의 어려움이었다. 하루 최소 몇쪽은 읽어야지 하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왜 이렇게 많은 양의 글을 남겼냐며 저자를 원망하기도 한다. 인간미가 느껴졌다.

계속 읽어내려갔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지나 자동으로 호두과자를 만들어주는 기계 이야기를 통과해 자연스럽게 소설가의 재능으로 흘러간다. 분명 같은 작가인데 글투와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머리로는 이런 생각을 하며 눈으로는 이야기를 따라 바쁘게 읽었다.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식이다.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서 꼭 언급해야 하는 굵직한 가지 주변에 작가 개인의 웃긴 이야기, 그리운 이야기, 게으른 이야기들을 끼워 넣는다. 소설에 대한 진지한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 소설가와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했을 뿐인데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기분이랄까.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 같은 애가 정작 시험을 잘 봐서 얄미운 느낌이랄까. 가벼운 분위기를 안고 있지만 마음과 머리에 남는 것은 묵직한 그런 책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남들보다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건 특히 타인의 좌절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테고,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테니, 자기 시간과 돈을 남들을 위해 쏟을 일도 많겠지. (중략) 그런데 동시에 이 사람은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이 원하는 바로 그 독자이기도 하다.(162쪽)

- P162



-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애당초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이었던 셈이다.(174쪽)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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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근마켓 -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아무튼 시리즈 59
이훤 지음 / 위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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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훤 <아무튼, 당근마켓> 위고

🙏 저자는 진지한데 독자는 웃겨죽겠는 글을 좋아한다. 주로 방심한 상태에서 이런 글을 만난다.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이 책을 폈다. 하루의 긴장을 풀고 활자를 읽어내려가다 갑자기 너무 웃겼다. 원래 이렇게 웃긴 분이셨나? 내가 저자를 잘못 봤나 싶어서 표지를 뒤적였다. 분명 SNS에서 주로 진지해 보이셨는데. 아닌가. 나는 다시 읽기 시작한다.

다시 배를 깔고 누웠다. 얼마 가지 못하고 나는 다시 깔깔거렸다. 그런데 또 얼마 있다가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아무튼, 당근마켓>은 ˝쓰던 것이든 새것이든˝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의 글이다. 그는 당근마켓이라는 중고거래 플랫폼에 관련한 경험과 물건에 대한 사유를 적어내려간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글과 새로운 시도가 한 책에 묶인 것을 근래에 보지를 못했다.

이 책은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테이블위에 비대칭, 대칭으로 배치된 그릇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든지, 당근마켓 ˝동네생활˝ 채팅창에 대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이라든지, 올해의 당근인 복희를 인터뷰해 가슴 뭉클하게 해서 당장이라도 당근 거래를 하러 나가고 싶게 만든다든지, 마지막에 작가의 말 대신 당근마켓에 대한 시를 넣어 진지하게 진심을 또박또박 새겨 넣는 식으로 이야기를 정성껏 쌓는다.

표지는 또 얼마나 영롱한지. 아무튼 시리즈 표지 중 (내가 아는 한 처음으로) 실사 사진으로 인쇄되었으며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는 부제목을 적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많은 독자들은 새로운 생각에 도착할 것이다. 누군가는 ˝중고거래하는 이들은 취향이 없을 것˝ 이라는 편견에서 빠져나올 것이며, 사람들의 손을 거쳐 그때그때 성실하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물건들에게 없던 애정도 생길 것이며, 우리는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끄덕이며 받아들일 것이다.

이야기는 앞말에 이어붙이는 것이 제맛이듯 우리는 남이 쓰던 물건과 함께 이야기를 건네받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잠자던 나의 당근마켓 앱을 업데이트했다.

이사 온 지 4개월이나 되었는데 정붙이지 못한 우리 동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덥힐 시간이다. 당근 당근!

- 별일 아니다. 물건과 화폐의 성공적인 교환이 있었을 뿐. 왜인지 안도되었다. 나의 첫 중고 거래 현장이었다.(8쪽)



- P8

- 어느 개인의 역사가 만난 적 없는 타인에게로, 어느 테이블의 역사가 다른 테이블로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좋다. 그곳에 담겼을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17쪽)



- P17

-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되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이 포개어진다. 아주 작은 물건을 손에 쥐면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18쪽)



- P18

- 이 교환장에 어찌 매료되지 않을까. 시간은 유한하고 생활의 촉매는 세상에 많고 우리의 욕망은 계속 자란다.(18쪽)


- P18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36쪽)

- P36

- 타인을 들이는 일에 조심스러워졌다. 한동안 폐점을 앞둔 식당처럼 살았다.(83쪽)



- P83

- 나의 동네는 어디까지일까. 무엇이 나와 이웃의 공통의 반경을 만드는 걸까.(83쪽)

- P83

저도 늘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가능하면 새로 만든 것 말고 한번 세상에 나온 걸 다시 쓰며 살고 싶어요.(106쪽)



- P106

- 30분 동안 정말 많은 대화가 오갔어요. 돌아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버스에서 혼자 생각했죠. 당근이 물건을 주고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자리구나. 옷 말고 다른 무언가를 받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112쪽)
- P112

3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저도 누군가 절 찾아주길 바랐어요

(일어난 적 없는 대화)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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