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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근마켓 -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ㅣ 아무튼 시리즈 59
이훤 지음 / 위고 / 2023년 9월
평점 :
📚 이훤 <아무튼, 당근마켓> 위고
🙏 저자는 진지한데 독자는 웃겨죽겠는 글을 좋아한다. 주로 방심한 상태에서 이런 글을 만난다.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이 책을 폈다. 하루의 긴장을 풀고 활자를 읽어내려가다 갑자기 너무 웃겼다. 원래 이렇게 웃긴 분이셨나? 내가 저자를 잘못 봤나 싶어서 표지를 뒤적였다. 분명 SNS에서 주로 진지해 보이셨는데. 아닌가. 나는 다시 읽기 시작한다.
다시 배를 깔고 누웠다. 얼마 가지 못하고 나는 다시 깔깔거렸다. 그런데 또 얼마 있다가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아무튼, 당근마켓>은 ˝쓰던 것이든 새것이든˝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의 글이다. 그는 당근마켓이라는 중고거래 플랫폼에 관련한 경험과 물건에 대한 사유를 적어내려간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글과 새로운 시도가 한 책에 묶인 것을 근래에 보지를 못했다.
이 책은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테이블위에 비대칭, 대칭으로 배치된 그릇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든지, 당근마켓 ˝동네생활˝ 채팅창에 대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이라든지, 올해의 당근인 복희를 인터뷰해 가슴 뭉클하게 해서 당장이라도 당근 거래를 하러 나가고 싶게 만든다든지, 마지막에 작가의 말 대신 당근마켓에 대한 시를 넣어 진지하게 진심을 또박또박 새겨 넣는 식으로 이야기를 정성껏 쌓는다.
표지는 또 얼마나 영롱한지. 아무튼 시리즈 표지 중 (내가 아는 한 처음으로) 실사 사진으로 인쇄되었으며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는 부제목을 적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많은 독자들은 새로운 생각에 도착할 것이다. 누군가는 ˝중고거래하는 이들은 취향이 없을 것˝ 이라는 편견에서 빠져나올 것이며, 사람들의 손을 거쳐 그때그때 성실하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물건들에게 없던 애정도 생길 것이며, 우리는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끄덕이며 받아들일 것이다.
이야기는 앞말에 이어붙이는 것이 제맛이듯 우리는 남이 쓰던 물건과 함께 이야기를 건네받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잠자던 나의 당근마켓 앱을 업데이트했다.
이사 온 지 4개월이나 되었는데 정붙이지 못한 우리 동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덥힐 시간이다. 당근 당근!
- 별일 아니다. 물건과 화폐의 성공적인 교환이 있었을 뿐. 왜인지 안도되었다. 나의 첫 중고 거래 현장이었다.(8쪽)
- P8
- 어느 개인의 역사가 만난 적 없는 타인에게로, 어느 테이블의 역사가 다른 테이블로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좋다. 그곳에 담겼을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17쪽)
- P17
-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되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이 포개어진다. 아주 작은 물건을 손에 쥐면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18쪽)
- P18
- 이 교환장에 어찌 매료되지 않을까. 시간은 유한하고 생활의 촉매는 세상에 많고 우리의 욕망은 계속 자란다.(18쪽)
- P18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36쪽)
- P36
- 타인을 들이는 일에 조심스러워졌다. 한동안 폐점을 앞둔 식당처럼 살았다.(83쪽)
- P83
- 나의 동네는 어디까지일까. 무엇이 나와 이웃의 공통의 반경을 만드는 걸까.(83쪽)
- P83
저도 늘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가능하면 새로 만든 것 말고 한번 세상에 나온 걸 다시 쓰며 살고 싶어요.(106쪽)
- P106
- 30분 동안 정말 많은 대화가 오갔어요. 돌아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버스에서 혼자 생각했죠. 당근이 물건을 주고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자리구나. 옷 말고 다른 무언가를 받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112쪽) - P112
3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저도 누군가 절 찾아주길 바랐어요
(일어난 적 없는 대화)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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